2025.10.07 (화)

  • 맑음동두천 25.8℃
  • 구름조금강릉 27.3℃
  • 맑음서울 26.6℃
  • 구름많음대전 25.0℃
  • 흐림대구 22.6℃
  • 흐림울산 23.8℃
  • 구름많음광주 24.8℃
  • 흐림부산 27.2℃
  • 구름조금고창 25.2℃
  • 제주 24.5℃
  • 맑음강화 25.7℃
  • 구름많음보은 24.4℃
  • 구름많음금산 25.9℃
  • 구름많음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2.1℃
  • 구름많음거제 25.3℃
기상청 제공
고려시대는 여자의 지위가 남자 부럽지 않았다. 그런 만큼 이혼과 재혼도 자유로웠다. 재혼을 한 부모를 둔 자녀들도 사회진출에 차별을 받지 않았고, 여자가 전(前) 남편의 자녀를 데리고 재혼하는 일도 꽤 있었다. 심지어 성종과 충숙왕, 충선왕 등은 이혼을 한 여자들을 왕비로 맞아들이기도 했다. 중국 송나라의 서긍이 고려를 방문한 뒤 돌아가 쓴 ‘고려도경’을 보면 ‘고려인들은 쉽게 결혼하고 쉽게 헤어진다’라는 기록이 나올 정도였다.

조선시대는 이혼이 법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었지만 사회적인 규범이나 제도적으로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남편은 ‘칠거지악(七去之惡)’이란 이유를 들어 일방적으로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었지만 아내가 칠거지악에 해당하는 잘못을 저질렀어도 ‘삼불거(三不去)’에 해당하면 이혼을 할 수 없었다. 또 이혼을 하려면 왕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더구나 조선시대 초기에는 재혼이 가능했으나 성종 16년(1485) 재혼이 법적으로 금지되며 중기 이후로는 이혼한 여자는 자식도 남편에게 빼앗기고 남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야 했다. 조선시대에 이혼이 어려웠던 것은 조선사회의 가치관이 유교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제임스 머레이 교수는 12년 동안 신혼부부 700쌍을 실험한 결과 94%의 적중률로 이혼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공식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머레이 교수의 실험방식은 이러했다. 각각의 부부가 ‘돈’이나 ‘성(性)’과 같은 논쟁의 여지가 큰 주제를 갖고 토론하는 장면을 약 15분간 녹화한 뒤 주어진 순서에 따라 그들이 내놓은 발언을 수치화했다. 수치화 기준은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거나 농담 또는 애정이 담긴 말이 나온다면 ‘플러스(+)’점수를, 방어적이거나 분노에 찬 발언에는 ‘마이너스(-)’ 점수를 줬다. 머레이 교수는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커플들의 향후 결혼생활에서 스트레스에 노출될 경우 얼마나 내성(耐性)을 갖고 있는 지를 산정했다. 실험을 마친 뒤 12년에 걸쳐 1~2년 간격을 두고 이들 부부에게 연락해 이혼 여부를 확인한 결과, 실험 당시 공식에 따라 나온 예측 결과가 94% 가량 들어맞았다고 한다.

요즘 연예계 화제가 되고 있는 서태지와 이지아의 이혼을 둘러싼 진실 공방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으로 몇 자 적어보았다. /이해덕 논설위원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