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이부지위정(惠而不知爲政)’. 은혜롭기는 하나 정치는 할 줄 모른다는 뜻이다. 그만큼 정치가 어렵다는 말이다. 정치인에게 덕(德)은 필수이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중국 고대 정나라의 정치가로 자산(子産)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진 재상으로 이름이 나 있었는데 그가 진수와 유수를 지나다가 백성들이 물을 건너기 위해 고생하는 것을 보고 측은히 여겨 자기의 수레에 함께 타고 건너게 해주었다.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러나 맹자는 자산의 이야기를 듣고 정치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자산은 은혜롭기는 하나 정치를 할줄 모른다. 11월에 사람들이 건널 수 있는 작은 다리를 놓고, 12월에 수레가 지나 다닐 수 있는 큰 다리를 놓으면 백성들이 물을 건너는데 근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면서 백성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정치는 삼류정치라고 비판했다. 맹자는 백성들을 수레에 실어 냇물을 건너게 하는 것은 온정을 베푸는 것이지 정치가 아니라며, 백성들의 농한기를 이용해 인도교를 세우고, 수레가 다닐 수 있는 차교를 시설하면 백성들이 물을 건너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 될 수 있는데 몇 사람에게 온정을 베푸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며 이런 정치는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정나라 목공의 후손으로 태어나 재상의 자리에 오른 자산은 중국 최초의 성문법을 제정해 인습적인 귀족정치를 배격하고 합리적이고 인간주의적인 활동으로 공자의 사상적 선구자가 됐던 사람이다. 공자와 같은 성인이 형처럼 섬길 정도로 자산은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맹자의 눈에 비친 자산의 행동은 대범한 정치인으로서는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큰 정치가라면 보다 대국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주요 쟁점들을 보면서 ‘혜이부지위정’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자기 수레로 백성들에게 냇물을 건너게 해주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다리를 놓겠다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후보자들이 내놓는 정책들을 보면 일단 지지표를 얻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얄팍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일시적이며 단편적인 정책으로 표심을 움직이겠다는 말인데 그건 삼류정치다. 물론 여민동락(與民同樂)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레에 몇 사람을 태우려는 정치는 오래가지 못한다. 수레에 몇 사람을 태우면 당장 인기를 끌 수 있을런지는 모르지만 정치인은 연예인이 아니다. 미래를 예견하며 다리를 놓아야 당장은 힘이 들고 인기가 없어도 차교를 만드는 일이 우선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몇 사람을 태우고 건넌다고 정치인의 소임을 다 했다고 볼 수 없다. 선거철이 되면 자신의 수레가 더 크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아무리 커도 몇 사람이나 실어 나르겠는가? 수레를 키우지 말고 다리를 놓는 일이 시급하다. /박남숙 용인시의원 (민·자치행정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