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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못할 나의 스승 <3>이태훈 前수원농고 교장

 

“재창조 통하여 학생들 가르치라”

올해 미수(米壽·88세)인 내가 스승을 말한다는 것이 쑥스럽기도 한 일이지만 나에게도 큰 스승이 있었다. 가난에 찌든 우리나라를 농업부국 덴마크 같은 국가로 만들어내는 계기를 이룬 농촌운동의 큰 스승, 故 星泉 류달영 선생이다. 마침 6일이 그가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라 더욱 감회가 깊다.

성천은 상록수의 주인공인 최용신 등과 더불어 농촌 계몽운동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내가 성천을 만난 것은 1947년이다. 수원농업중학교(수원농생명과학고교)를 졸업하고 청주사범학교 1회 수료후 1944년 평택 부용공립보통학교에서 훈도로서 몇 년간 교편을 잡았었다.

중등학교 교원이 되기 위한 꿈을 품고 학교를 사직한 뒤 서울대 농과대학 부설 중등교원양성소 원예과에 입학해 그를 만났던 것이다. 수원고등농림학교(서울농대 전신)를 졸업하고 서울농대 원예학과 교수로 갓 발령을 받으신 때였다. 화훼를 가르치셨지만 수필가이신지라 국어도 가르치시고, 시를 알려주시던 감수성도 예민한 분이자 때로는 강직한 성품도 소유하셨다. 농업학교를 나오고, 또 보통학교 선생을 하던 나를 귀여워하셨다. 화훼실습 시간이면 나를 항상 불러 조교로 삼아주시며 나에게 성취욕과 용기를 북돋워주셨다.

졸업후 나를 당신의 고향인 이천의 중학교로 교장선생께 천거하셨고, 고등학교 교원이 될 때까지도 멘토가 돼주셨다. 하루는 편지를 썼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듯 도매로 배운 것을 학생들에게 잘 소매하고 있다”고. 농업교원 연수가 서울농대에서 있어 찾아뵜더니 불호령이 떨어졌다. “대학에서 도매로 배운 것을 소매하는 선생들이 많다고 한 것이다. 도매로 배웠더라도 재창조를 하여 소신껏 학생들을 가르치라”며 야단을 하셨다.

이 말씀은 내가 농업교사로서 늘 연구에 몰두한 큰 계기가 됐다. 이천농고 교사재직시절 창호로 만든 모종포가 훼손되기 일쑤여서 비닐로 대체하는 것이 어떤가에 대한 연구를 하여 樂喜化學(지금의 LG화학)에 제안한 결과 우리나라 비닐하우스 농법의 효시를 이루게 된 것도 모두가 성천의 평소 가르침 덕택이었다. 모종포보다 비닐포가 온도가 높고, 비바람에도 견뎌내는 힘이 크다는 것을 입증한 결과 이 때부터 비닐이 농가에 대량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강의시간에도 항상 청년학도들에게 개척과 도전정신을 일깨워주셨다. 학부도 졸업하지 못한 내가 중등교원으로 성공하고 농업교사가 승진에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당신께서 보내주신 이천에서 교육장을 지내고, 경기도교육연구원장, 경기도교육위원회 학무국장 등 교육계의 요직을 두루 거쳤던 것도 선생으로부터 배운 도전정신의 덕택이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농민을 사랑하고 대변한 농촌운동의 대부이자 제자를 사랑하는 휴머니스트로서의 길을 걸은 그다. 7년 전 93세를 일기로 귀천하셨지만 탄생 100주년인 오늘 “인간답게 살자”고 외치던 성천 선생의 기억이 아직도 뇌리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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