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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하여

 

평택 팽성에서 안중 쪽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비밀장소가 있다. 그곳에는 가끔 낚시를 즐기거나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도 하니 나만 안다고 생각하는 공공연한 비밀장소인 셈이다. 난 이따금씩 하루의 일과로 머리가 아프거나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을 때면 숨어 있기 좋은 방을 찾듯 저녁 무렵 혼자서 카메라 하나와 메모지를 들고 차로 이십분 거리에 있는 이곳을 찾곤 했다.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둑 위로 올라가 걷다보면 강물은 지는 해를 따라 황금빛으로 물들었고 강을 끼고 펼쳐져 있는 넓은 습지에서는 갈대가 숲을 이뤄 그들만의 언어로 소살거렸다. 습지에서 둑으로 이어진 곳에는 하얀 개망초 꽃이 하나 가득 피어있고 키 큰 코스모스는 둑을 따라 길게 늘어서 바람이 흔들릴 때마다 그들만의 유연하고 환상적인 화무(花舞)를 보여주었다. 그 풍경에 취해 울퉁불퉁한 둑길을 걷다보면 흰 백로 떼가 길 위에 무리를 지어 앉아있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그러면 가던 길을 멈추고 쪼그리고 앉아 백로 떼가 날아가기를 마냥 기다리곤 했다. 기약 없이 한참을 기다리다보면 백로 떼는 무리를 지어 석양이 지는 하늘로 날아올랐고,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 것도 그 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다.

바쁜 일상은 사람의 마음에서 여유를 앗아가 한동안 그곳을 잊고 지내다 며칠 전, 묵은 기억을 꺼내듯 근 일 년 만에 다시 그곳을 찾게 됐다. 그러나 그곳엔 이미 개망초 꽃도 갈대도 백로도 보이지 않았고 다만 공사 중임을 알리는 흉물스러운 표지판과 여기저기 쌓아놓은 흙들과 포크레인이 즐비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곳은 자전거도로를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자연을 훼손해 자전거도로를 만드는 일, 그것은 마치 조화를 만들기 위해 향기를 지닌 진짜 꽃을 뽑아버리는 걸 보는 것처럼 가슴 아픈 일이었다.

세상은 언제나 인간의 편리에 의해 변해간다. 그 편리도 결국은 조금 더 행복한 인간을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 행복이란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한 것일까. 인간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4대강 사업이 나라 곳곳에서 자행되고 도시 곳곳에 난개발이 이어지고 그로 인해 자연이 죽고 수많은 동식물과 새들의 거처였던 갯벌과 습지가 사라진다. 물과 나무와 동식물과 새들에게 자연 그대로의 장소만큼 좋은 환경은 없다. 인공적인 곳에서 그들은 죽어가고 그들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며 우리는 오로지 인간의 편리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나는 열렬한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세상에 내세울만한 그럴듯한 직함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한 소시민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곳곳에서 자연이 마구잡이로 훼손되는 것을 보면 통탄을 금할 길이 없다.

시민들의 행복을 위해 만든다는 자전거도로, 그 길을 허물고 얼마나 예쁜 자전거도로가 생길지는 모르지만 예전에 내가 느꼈던 그런 곳은 결코 아닐 것이다. 우리는 행복이라는 말의 근본적인 의미를 너무 잊고 사는 건 아닐까. 우리가 현재 살고 있고 앞으로 우리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오래도록 살아가야 할 이 땅이 눈에 보이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인간의 그릇된 이기심으로 인해 곳곳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것들을 우린 아니,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지켜만 봐야 하는 것일까. /임봄 시인

▲<애지> 등단(2009년) ▲한국문예창장회 회원 ▲호접몽 동인 ▲고려대학교 인문정보대학원 석사과정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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