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와 구리시의 경계에 아차산(阿且山, 285m)이 있다. 이곳엔 삼국시대 산성인 아차산성(사적 제234호)이 있는데 동·서·남쪽에 문이 있던 흔적과 물길, 문 앞을 가려 보호하는 곡성이 남아있다. 이곳 아차산성에는 두 개의 슬픈 역사가 전해온다. 하나는 백제의 수도 한산이 고구려에 함락됐을 때 개로왕이 성 아래에서 죽음을 당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인 온달(溫達·?~590)장군이 죽령 이북의 잃어버린 땅을 찾기 위해 신라군과 싸우다가 이 성 아래에서 죽었다는 것으로, 이러한 전설을 간직한 온달샘이 성안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경관이 가장 좋은 산성을 꼽는다면 충북 단양의 온달산성(사적 제264호)이 있다. 남문은 조선의 풍수학자 남사고(南師古)가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고 말한 소백산을 조망하기 좋은 명당이다. 경관 뿐 아니라 삼국의 산성 중 보존상태가 가장 좋다는 온달산성은 이름처럼 온달과 평강공주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온다. 삼국사기 ‘온달전’을 보면 온달은 신라에 빼앗긴 남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590년(영양왕 1)에 천릿길을 달려왔다. 온달은 “계립령과 죽령 서쪽 땅을 되찾지 못한다면 돌아오지 않겠다”며 비장한 출사표를 던졌지만 안타깝게도 아단성(阿旦城)에서 신라군과 싸우다 화살에 맞아 죽고 만다. 그렇다면 아단성은 어디일까. 삼국사기의 아단성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는데, 현재는 서울의 아차산성으로 보는 견해와 단양의 온달산성으로 보는 견해로 나뉘고 있다.
온달 장군이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건너온 왕족의 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최근 학계에서 제기돼 흥미롭다. 연세대 지배선 교수는 자신의 논문 ‘사마르칸트와 고구려 관계에 대하여’에서 “온달 장군은 서역인과 고구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의 자녀로, 고구려 장군의 지위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사마르칸트는 당시 ‘강국(康國)’이라 불리던 큰 나라였다. 강국은 13세기 몽골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실크로드에 자리잡은 동서교역의 요충지였다. 중앙아시아와 고구려 유민사를 연구하는 지 교수가 주목한 것은 온달과 관련된 각종 고서의 기록이다. 그는 고서에서 ‘사마르칸트 왕의 성은 온(溫)씨’라고 기록한 부분에 주목했다.
주장대로라면 온달 장군은 원조 다문화가정인 셈이다. 역사란 승자(勝者)의 기록이라고 한다. 승자의 기록은 역사가 되지만 패자(敗者)의 기록은 설화로 탈색(脫色)이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바보 온달이야기는 역사에 가려진 설화일 가능성이 높다. /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