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어머님을 좋은 곳으로 모셨다. 진남포가 고향이신 어머님은 6.25 전쟁 때 가족들과 월남하신 실향민이셨다. 월남 후 미군부대를 다니셨던 아버지를 만나 19살에 결혼하셨으나 내가 3살이되던 해에 아버님과 사별하시고 누나와 나 두 남매를 키우셨다. 어머님이 살아오신 길을 뒤돌아 오면 그 삶의 곳곳이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소설과 영화의 한 장면으로 점철된 아픔의 기록이었다.
청상의 아픔을 딛고 미용실로, 남의 집 식모로, 식당으로, 동대문시장의 밥집 아줌마로 살아오면서 삶의 모든 것을 우리 두 남매를 키우시는데 만 진력하셨다. 실향민이 그러하듯 억척과 정말 강인한 의지로 한평생을 살아오신 그분도 결국 작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타향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여성이시면서도 큰 목청과 불같은 성격으로 우리 남매를 키워내신 어머니.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엄한 훈육과 사랑으로 우리를 가르쳤다. 특히 아버님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 질 때마다 평양 영생고보 출신이며, 수재이며, 총알이라는 별명을 들으실 정도로 빠르게 달리셨다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우리에게 되새겨 주곤 하셨다. 그 어머니를 이제 영영 다시 볼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정말 아픔으로 가득찬다.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으로 바르게 자란 우리 남매는 이제 직장도, 생활도, 가족도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어 이제는 정말 어머님을 잘 모시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 다는 말을 내가 실감 할 줄은 정말 몰랐다. 며칠 전 아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고자 핸드폰의 전화번호부를 검색하던 중 눈에 와 박히는 이름 하나를 보고 가슴이 울컥했다. ‘엄마! 엄마! 엄마!’라는 내 핸드폰에 남아있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발견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했던 그 어머니가, 언제나 아들 편이었던 그 어머니가 핸드폰 속에 남아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전화를 걸면 엄마가 받지 않을까하는 생각 속에 걸까, 말까하는 수도 없는 망설임을 반복했다. 하지만 끝내 전화도 걸지 못하고 핸드폰속의 이름도 지우지 못했다. 내가 죽는 날까지 이 핸드폰 속의 어머니를 어떻게 지울 수 있으랴! 그 분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떨쳐 낼 수 있을까! 부모님들은 돌아가시면서 자식들에게 정말 많은 것을 물려주신다는 옛말이 있다.
막상 어머님을 보내고 나니 그 뜻이 무엇인 줄 이제는 알 것 같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생을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주셨고, 가족들 간에는 더욱더 사랑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셨다. 병 수발로 인해 자식들이 불편해할까 바 돌아가시면서까지 마음 쓰셨던 어머님의 그 사랑을 누나와 우리 가족 모두는 이제 알게 됐다.
5월은 가정의 달이며 어버이 날이 있는 달이다. 지금 주변에 어머님이나 아버님이 계시다면 사랑한다고 말씀드리자. 어디 아픈 데는 없냐고 여쭤보고 어깨라도 주물러 드리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지금 당장 부모님에게 오늘 저녁 찾아 뵐 테니 저녁이라도 같이 하자는 전화라도 드리자. 아직 부모님들이 생존해 계시는 분들은 정말 행복하지 않은가. 하늘로 통하는 전화가 있다면 단 한 번만이라도 어머님의 목소리를 듣고 싶고 그 따뜻한 품에 안겨 울어보고 싶은 5월이다. /염필선 동두천시청 기획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