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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달밤에 물 긷기

 

흐드러지게 피었던 벗 꽃도 소담스러웠던 목련도 봄비에 스러져 지는 봄꽃의 애수가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연 초록 이파리가 빈 가지마다 무성이 차오르는 5월이다. 봄볕 따뜻해도 집안에서야 춘곤증 잠만 늘어난다는 팔십 넘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 내외와 손위 시누이와 함께 강원도 설악산아래 오색약수터를 다녀왔다. 연휴라 나들이행차가 많을 성싶어 식전에 출발했다. 가는 길은 생각보다 번잡하지 않았다. 보드라운 녹두 빛이며 연두 빛, 연회색 빛깔로 꽉 찬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산과, 선명한 다홍빛 철쭉꽃이 무더기로 피어있는 길은 일상의 번뇌를 사라지게 하고도 남았다. 어린이처럼 좋아하시는 어머님과 말없는 나 대신에 들뜬 목소리로 분위기를 띄우는 시누이의 대화로 재미있게 몇 시간이 후딱 지났다.

산 길을 돌아 목적지에 도착하니 한 시경이 됐다. 가벼운 점심을 하고 온천 욕을 즐겼다. 어머니께서 탄산온천수와 열탕을 오가시는 활기찬 모습을 보니 절로 기쁜 맘이 되었다. 근처 식당에서 산나물과 더덕구이 황태구이 등 토속음식으로 맛있게 저녁을 먹고 오색약수터로 산책을 했다. 토산품을 파는 점포가 즐비한 길에 이름 모를 들꽃이 담긴 화분에서 지들끼리 뭐라 속삭이며 정겹게 말을 걸어오는 듯하였다. 말갛게 물에 씻긴 바위와 돌멩이가 계곡을 이루는 그 곳엔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오색약수터 표지판엔 오색약수의 유래와 탄산수의 톡 쏘는 맛과 철분이 함유돼 위장병에 좋다는 설명이 있었다. 그래선지 약수가 고이는 부근엔 녹슨 듯한 붉은 빛의 바위가 널려있었다. 정말로 처음 먹어본 사람은 그 짜릿하고 쇗네나는 물맛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루 동안 다섯 가지로 변하는 오색약수가 그렇게도 신통하다는 믿음 아니면 먹기 힘든 맛이다. 우리식구들은 이 신비한 물에 현혹이라도 된 듯 첨에 웩! 하고 마시던 한 모금에서 급기야는 물을 떠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런데 조그만 양동이 크기의 돌 웅덩이에 쫄쫄 고이는 물은 이 사람 저 사람 맛보는 것만해도 아예 고이기도 전에 바닥이 드러날 형편이었다. 그때 어머님께서 하시는 말씀 “이따가 밤에 와서 밤새 퍼 가려무나! 그때야 사람도 없겠고 몇 통이야 못 담겠니?” 순간 웃음도 났지만 혹시 몰라 준비해온 반 말짜리 물통과 PT 병도 있어 우린 모두 그러기로 했다.

드디어 어두워지자 어머님만 객실에 계시고 우리 셋은 약수터로 향했다. 낯보다는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도 제법 불었지만 산 공기가 폐부의 오염된 공기를 정화 하는 듯 상쾌했다. 거센 골짜기 바람소리와 흰 물거품을 날리며 흐르는 거친 물소리는 밤의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계곡 위쪽에 빨간 조명글자가 ‘입산금지, 자연보호’문구를 달리하며 껌벅껌벅 비추는 것이 누가 지켜보는 듯 위협적으로 느껴졌지만, 바람 소리와는 다르게 포근한 봄바람이며 까만 하늘의 초승달은 천사의 미소같이 다정한 윙크를 보내는 듯했다. ‘조물주께서 만든 이 자연에서 생명수처럼 솟아나는 약수를 공짜로 퍼가는 것쯤이야 하느님 용서하시겠지요. 잠 안자고 욕심껏 물을 깃는 이 극성쯤이야 어여삐 보시겠지요. 우리 어머니들이, 이 땅에서 자식 위해 몸 사리지 않고 부지런하고 억척스럽게 살아온 인생을 이해하시겠지요.’ 이런저런 생각이 깊어질 무렵 별들이 선명히 반짝이며 나타나고 봄 밤에 물 깃는 우리는 그대로 하나의 풍경 속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손유미 시인

▲ 문학세계 시부문 등단 ▲ 경기 수필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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