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조금은 쌀쌀하던 3월 어느 날, 산중에서 몸을 챙기던 선배의 모습은 여전히 강인하고 당찬 모습이었다.
4년 전 중앙 일간지 기자생활을 정리하고 ‘섬기는 정치’를 실천하겠다며 현실정치에 입문했던 선배에게 남겨진 것은 총선과 지방선거에서의 패배와 함께 설상가상으로 찾아든 치유할 수 없는 병마와의 힘든 싸움이었다.
투병 중에도 한 보따리 책을 풀어놓고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쓰던 모습을 보면서 반드시 이겨내서 밝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며 두 손 굳게 맞잡아 위로하며, 속으로는 마지막 인사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헤어졌는데 급기야 며칠 전 하느님 품에 잠든 선배의 빈소를 찾고 보니 어찌나 속이 허하고 시리는지….
“깨끗하고 정직하고 겸손한 자세로 봉사하는 정치를 통해 살맛나는 세상을 꿈꿉니다. 나라와 민족 구성원 모두의 풍요로운 삶을 꿈꿉니다. 부자와 강자만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까지 행복한 세상을 꿈꿉니다.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듬어서 차별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하고 공교육을 강화해서 사교육비 걱정을 덜어드려야 합니다. 내 집 마련과 노후걱정도 덜어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해야 할 일이고, 정치인의 역할이라 믿습니다. 가까이에서 늘 소통하고 봉사하는 정치를 실현해갈 것입니다. 벽돌 한 장 한 장 쌓는 심정으로 튀는 말보다는, 과장된 공약보다는 성실하고 겸손하게 일하는, 뚜벅뚜벅 한 길을 걸어가는 황소 같은 정치인이 될 것입니다. 약자와 강자가 차별 없는, 모두가 살맛나는 세상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합니다.”
선배는 ‘왜 정치하려느냐?’는 세인들의 물음에 이렇게 분명하게 답했다.
‘재물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 했는데, 결국 선배는 모든 것을 잃고 그토록 꿈꾸던 일들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선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오로지 정치활동에만 몰입하면서 몸에 탈이 생긴 것조차 챙기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2년 전 전직 대통령의 서거 후 산자들의 몫을 강조하며 사자후를 토해내던 선배의 모습이 눈에 선하기만 하다. 그가 꿈꾸던 세상이 그려진 책장을 다시 넘기며 마음을 추스른다.
“선배님, 하늘나라에선 아프지 말고 행복하세요. 제가 대신 열심히 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