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처럼 문인이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아마 인구비례로 따지자면 전 세계에서 1위를 차지할 지도 모른다.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고 삶의 질을 판단하는 이 황량한 시대에서 그나마 정신세계를 추구하고 우주와 지구의 모든 생명체 무생명체에 눈길을 주는 문인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문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이를테면 ‘함량 미달의 문인’들이 양산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그것이다. 사실 그런 면이 아주 없지는 않다. 어느날 갑자기 시인과 수필가가 돼 있는 사람들이 많다.
대낮에 강남의 어느 아파트 앞에서 ‘시인님~’또는 ‘작가님~’ 하고 부르면 창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주부들이 전체의 반이나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전국에서 발행되는 문학잡지도 어림잡아 100종은 넘는다. 이 문학잡지들이 신인을 양산시키고 있다. 일부는 등단을 미끼로 금품을 요구하거나 책을 구입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예전엔 문단 데뷔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다. 그래서 문단에 나서기까지 끝없는 독서와 사색, 치열한 습작의 과정을 거쳤다. 이시간에도 이렇게 문학에의 천착(穿鑿)을 멈추지 않는 문학도들은 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수원에 사는 김석일 시인이다. 수원 태생으로서 60 즈음의 나이에 문단에 등단한 늦깎이지만 젊은 시인 못지않은 치열한 시작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1949년 생, 올해 한국나이로 예순세살인 그는 지난해 한신대학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는 등 시창작과 함께 문학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어 주변의 찬사를 받고 있다.
그가 최근 첫시집 ‘늙은 아들’을 펴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아내를/엄마라고 불렀다//그리곤/울었다’-‘늙은 아들’ 전문. 이 짧은 시는 얼마 전 어머니를 잃은 김시인의 사모곡(思母曲)으로 독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오랜 병을 앓던 어머니가 이승을 떠난 뒤 늙어버린 아내에게서 어머니를 발견하는 늙은 아들의 울음에 그만 목이 메인다.
지금까지 문학과는 거리가 먼 길을 걸어오다가 60이 다 된 나이에 시를 습작하며 대학원 공부까지 한 그의 집념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또 그간 묵묵히 각고의 노력으로 시를 써 온 대가로 얻은 문학적 성취도 빛난다. 더욱 기대가 되는 것은 늦은 나이임에도 더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는 것이다. 너나할 것 없이 손쉽게 시인이 되고 수필가가 되는 요즘 세상에서 김석일 시인이 돋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수원은 또 한명의 좋은 시인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