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늦은 저녁에도 달이 어찌나 밝던지 산책을 나섰다. 모내기를 위해 써레질을 마친 무논에 산이 내려와 잠기고, 보름달이 뜨고 오랜만에 들어도 개구리는 귀에 익은 소리로 울었다.
내 어릴적 고향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어른들은 농삿일과 집안 대소사를 함께 모여 공동으로 했다.
이집 저집에서 태어난 고만 고만한 아이들도 다 같이 모여 학교를 다니고 모여서 숙제를 하고 방학 숙제로 곤충채집이나 식물채집을 하고 다니며 자연스럽게 학용품도 같이 쓰곤 했다. 코흘리개 어린 시절부터 모듬살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회성을 터득하며 자라났다.
우리 집엔 예쁜 꽃들이 늦은 가을까지 피고 갖가지 유실수도 심어 특히 복숭아나무가 많아 봄에는 꽃으로 덮이고 여름에는 복숭아가 탐스럽게 익어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먹을 게 부족하던 시절이라 제삿날이면 친구들이 서로 책가방도 들어주고 청소 당번도 거들어주며 졸음을 참고 어른들 틈에 끼어 제사가 끝나길 기다렸다. 요즘은 내 컴퓨터, 내 방은 기본이고, 내 자동차에, 내 집을 갖고 있다.
군것질을 할 때도 각자 하나씩이고 나눠 먹는 것은 피자밖에 없다는 말이 그냥 지나치기에는 저으기 염려가 된다. 별 그리울 것 없는 생활이 가족들도 소원하게 한다. 물질의 풍요가 우리 생활을 윤택하게 해 준 대가로 치기에는 상실이 크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아이들에게 일부러 먹을 것도 나누어 주고 물건도 나눠 쓰게 해 부족한 가운데 물질의 소중함도 알게 하고 형제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습관을 길러 준다고 한다.
가족끼리 모여서 밥도 같이 먹고 텔레비전도 같이 보는 가운데 얘기도 나누게 되고 정도 든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데 너나없이 바쁘다는 이유 하나면 가볍게 지나친다.
예전에는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나라와 같이 모든 것이 나 중심이 아닌 나와 또 다른 사람을 동반한 우리로 집약 됐다.
워낙 부지런 하시고 인정 많으신 부모님께서는 농삿일을 할 젊은 남자가 없는 집을 자주 보살피셨고 특히 어머니께서는 아침 일찍 밥을 지으시려니 했는데 장독대를 지나 뒤꼍에서 울타리 밖을 살피신다는 것을 알았다.
큰살림 하는 여자는 식구들 밥 짓는 일도 중요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연기 못 올리는 집 있나 살펴 그 집 식구들 불러들여 일을 같이 하면 마음 다치지 않고 끼니 거르지 않게 보살필 수 있다고 하시던 말씀이 그 당시 어머니의 연세를 지나고도 잊을 수가 없다.
벌써 오래전의 일로 어느 대통령께서 재임 중 토지공개념을 주장해 한 차례 술렁이더니 또 얼마 전에는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주장한 이익공유제를 놓고 모 재벌 총수께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이참에 행복공유제를 얘기하면 주변에서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혼자 웃는다. 우리가 아닌 나로 살아가기를 추구하는 세태에 끼어서 행복은 아무 곳에나 쉽게 깃들이지 않는 파랑새라고 하기엔 아름다운 신록이 오히려 서글프다. 그러고 보면 핵무기보다 무서운 핵가족이 아닌지 짚어 볼 일이다.
정진윤시인
▲ 가평 출생 ▲ 한국 문인 협회 회원
▲ 한국 작가 신인상 수상 ▲ 가평 문학상 수상
▲ (現)가평 문협 사무국장 ▲ 플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