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다당제(多黨制)가 가능할까? 언제쯤이면 공산당 일당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며칠전 여야정당원 중국 정치제도 연수에 참여하면서 고속성장을 거듭하는 중국의 민주화가 가장 궁금했다.
여기엔 북한의 목줄(?)을 쥔 중국의 체제변화가 자연스레 북녘 동토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바람도 섞여 있음은 물론이다.
당초부터 명쾌한 답변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희망섞인 전망을 들을 수 있었다.
공산당 간부를 양성하는 중앙당교(中央黨校) 한 교수에게 던진 질문에 그는 조심스레 이런 전망을 내놓았다. “15년쯤 지나면 국민 정치참여 욕구가 커질 것이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통제 속 점진적 민주화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중국의 민주화는 국가확립 단계를 지나 현재는 중앙 관료시대에서 정치제도화로 가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보편적 참여 단계로 진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고위 간부로 가기 위한 필수 코스인 중앙당교는 1933년 세워진 ‘마르크스 공산주의 학교’가 2년 뒤 이름을 바꾼 것으로 모택동, 화국봉, 후진타오 등 핵심 인물들이 교장을 거친 곳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가 교훈인 이곳 교수로부터 중국에 밀려들 정치 변화의 물결을 접하면서 3대 세습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북한이 거듭 오버랩되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편으론 귀국하자마자 ‘마르크스는 자유의 확장이 혁명이라는 폭력적 수단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고 말한다’는 내용 등을 소개하며 마르크스 혁명론을 상세히 소개한 경기교육청의 5·18 계기교육자료가 이념편향 논란을 빚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시대를 거슬러가는 듯한 혼돈을 느껴야 했다.
성장의 기관차를 단 중국. “12~13%의 경제성장률을 8~9%로 낮추려해도 12% 성장을 이루기도 한다”는 북경대 심정창 교수의 특강을 들으면서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리의 70~80년대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그 과정에서 자동차가 크게 늘면서 예전의 ‘코리아 타임’ 대신 ‘베이징 타임’이 생겨났다는 우스갯소리에 씁쓸한 미소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북경의 여러 기관을 방문하면서 공통적으로 제기된 과제는 격차문제였다. 발전개혁위원회 한 고위관료는 ‘부조화’라는 단어를 썼다. 소득격차가 벌어지면서 사회 모순이 심화되고 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중국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이라고 낮춘 그는 올해부터 인간중심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발전 성과를 공유하는 정책에 포커스를 맞춰 고소득층을 일정 제한하고 기부분위기를 조성하며 중산층은 넓히고 저소득층은 보조금, 임금인상, 처우개선을 통해 수입원 증가를 꾀하는 것이다.
낯설지 않은 정책이다. 얼핏 우리와 닮은꼴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번번히 듣지못한 답이 있었다. 토지문제다. 국가가 소유하고 임대해 쓰는 제도에서 임대기간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냐는 질문에 누구도 명쾌한 전망을 내놓지 못했다.
과연 어떻게 될까? 일부 외국기업들이 재임대했다는 사실로 유추할 뿐이다.
1950년 국유화한 토지의 개인소유가 언젠가 허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중국은 이제 누구에게나 낯선 땅이 아닌 ‘시장경제 공룡국가’임을 이번 연수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중국은 미국을 능가하는 중요 국가인가? 귀국 전 고위직 외교관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미국은 ‘보험’, 중국은 ‘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