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 미 2사단 23연대 전투단에 배속된 프랑스군 1개 대대가 중공군 3개 사단 3만여명과 싸워 승리한다. 이곳이 앙평군 지평면 부근이다. 지평리전투는 미군과 프랑스군, 한국군이 병력의 열세에도 중공군의 파생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한 한국전쟁 10대 전투 중 하나이다.
지평리전투는 중공군 4차 공세 때 미 2사단 23연대와 프랑스 대대가 10배 이상인 중공군 3개 사단의 공세에 맞서 승리한 전투이다. 특히 프랑스대대는 몽클라르 중장이 대대 병력을 이끌려고 스스로 중령으로 강등해 참전해 전투를 지휘했다. 미군과 프랑스군은 당시 94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지만 중공군 5천여명을 사살했다.
지평리전투 60주년을 맞은 27일 양평군 지평면 지평리에서 미군과 프랑스군, 한국군 참전용사와 그 가족을 포함해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방부 주최로 상기행사가 열렸다. 당시 미 2사단 23연대 1대대 소속 상병으로 참전했던 찰스 케이스 헌트(Charles Keith Hunt·81)씨가 60년 만에 그때 그 현장을 다시 찾았다.
고령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고 밝은 표정에 목소리도 맑았다. 헌트씨는 “1950년 11월 함선을 타고 인천항으로 들어올 때 다들 크리스마스 전에 귀환할 줄 알았었다”고 회고하면서 “지평리에서 첫 전투를 치렀다”고 말했다. 그는 “방어진지 주변을 수색하던 중 아군 진지를 포위한 중공군을 발견했는데 그때가 전투의 시작이었다”며 “낮에는 저격수만 조심하면 될 정도로 조용했지만, 밤마다 1~2시간씩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했다.
이어 쌍굴터널 탱크 진입로 확보 작전과 지평리전투의 종결자로 등장한 전자중대와 포병대대의 지원작전을 떠올렸다. 휴전 후 병장으로 전역하고 나서 60년 만에 한국을 찾아온 그는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한국처럼 믿기 어렵게 달라진 나라는 없었다”며 한국의 변화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국방부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끌로드 피종(Claude Pigeon)씨를 비롯한 프랑스 참전용사 4명도 참석했다. 전적비에서 열린 합동추모식에 이어 지평면 광장에서는 한국전 전투장비·유품 전시, 군악대·의장대·모듬북 공연, 특공무술 시범 등이 마련됐다. 그들의 국경을 넘은 보편적 인류애 사랑은 우리가 꼭 배워 베풀어야 할 것들이다.
/안병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