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가 3월말 기준으로 800조원을 넘어서면서 우리 경제의 최대 위협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가계 부실은 회복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기업부실보다 악성의 위기로 취급된다. 기업은 부도가 나면 법정관리와 자본소각, 임금삭감 등 구조조정을 통해서 기업회생을 도모할 수 있지만, 한번 부도난 가계는 살려낼 방법이 없어서 경제에서 완전히 퇴장할 때까지 30년을 기다려야 한다. 90년대 들어서 부동산 버블 붕괴를 경험한 일본이 아직도 경제침체를 겪는 것은 가계의 건전성이 아직도 나쁘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가계부채 800조원 규모는 제1, 제2금융권 등 제도권의 가계부채로 여기에서 배제된 자영업자 부채와 대부업체 대출금 등을 합한 실제 가계부채는 1천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국 가계부채는 현재 가처분 소득의 155%에 달하는데, 지난 2003년 카드 대란 때의 130%나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 때의 137%를 대폭 웃도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155%는 가처분소득을 모두 빚을 갚는 데 써도 1년 반이 걸릴 정도의 부채를 갖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다가 더 큰 문제는 가계부채가 물가와 금리, 부동산 등 현재 우리 경제의 뇌관과 복잡하게 얽혀있어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물가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서민들의 원리금 상환과 이자 부담이 무거워지고,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을 초래해서 금융시스템과 경제 전반에 혼란을 줄 수 있다.
가계부채 증가의 주원인은 저금리로 지적된다. 가계부채는 2008년 688조원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2.0% 내린 2009년 2월 이후 급증, 매 분기마다 2%가 넘는 증가율을 보이면서 2009년 9월 733조원으로 700조원을 넘었고 1년 반 만에 800조원을 돌파했다. 또 대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수천억 원씩 쌓아두고, 주식시장을 통해서 자금을 조달하는 상황에서 마땅히 돈을 굴릴 데가 없는 금융회사들이 경쟁적으로 가계대출을 늘린 것도 주요한 원인이고, 지불수단인 신용카드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대출 수단으로 쓰이면서 카드사가 신용을 창출해 내는 것도 한몫을 담당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아직 관리가 가능한 건전한 측면이 있다. 부채는 상환 능력만 있으면 규모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계가 보유한 예금과 보험 및 연금, 채권, 주식 등을 합친 금융자산이 부채보다 얼마나 많은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배율이 있다. 2008년 2.1이었지만 2009년 2.27, 2010년 2.32로 부채보다 자산이 더 늘어나 가계의 건전성이 개선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미국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평균 70∼80%에 달했지만, 우리나라는 40%로 규제하고 있고, 총부채상환비율(DTI)도 평균 23%로 보수적인 대출이 이뤄지고 있어서 금융기관 부실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우리는 이미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10년 남짓한 기간에 3차례의 경제위기를 겪었다. 이때마다 경제체질강화와 금융시스템의 선진화가 지적됐지만,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또 다시 위기를 예감하고 있다. 더 이상 가계부채의 증가를 방치하면 경기 침체나 집값 폭락이 닥칠 경우 경제 전체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정부는 상환능력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은행들의 가계대출 경쟁에 제동을 걸어야 하고, 가계부채 구조를 고정금리와 분할상환 쪽으로 유인해야한다. 금리인상은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을 줄여 나가는 연착륙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적절하게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