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나 휴일에 약을 구하기 힘든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해온 일반약 약국 외 판매가 결국 무산됐다. 1년 이상 끌어온 일반약의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판매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지난 3일 약국의 야간 및 휴일영업을 늘리겠다는 약사회의 안을 받아들였기 떼문이다. 대신 복지부는 이달 중순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열고 현행 의약품 분류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의약품 재분류를 통해 약국 이외 어디서나 팔 수 있는 ‘의약외품’ 항목을 늘리거나 약국 외 판매가 가능한 약품군을 새로 만드는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약사회는 이날 모든 약국이 의무적으로 주 1회 밤 12시까지, 월 1회 일요일에 문을 열겠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또 전국 2만 개 약국 가운데 자정까지 운영하는 당번약국을 평일에는 4천 곳, 휴일에는 5천 곳씩 운영하고, 저소득층부터 순차적으로 가정상비약 보관함을 전 가정에 배포하고 보관함에는 약사의 연락처를 기재해 24시간 언제든지 복약 상담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같은 약사회의 약속이 지켜질 지는 의문이다. 약사회가 작년 7월부터 50여개 약국이 새벽 2시까지 문을 여는 심야응급약국제를 실시했으나 지난 4월 경실련의 조사 결과 19%가 문을 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약을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등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시민들의 요구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더욱이 의약분업으로 약국이 병·의원 주위에 몰려있는데다 공휴일이나 진료시간이 지나면 문을 닫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긴급히 소화제나 감기약 등 비교적 간단한 일반약을 구입하려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런데도 시민들의 불편은 아랑곳없이 편의대로 약국을 운영해오다 정부가 약국 외 판매 허용을 추진하자 부리나케 대책을 내놓은 것은 불편 해소를 원하는 시민들을 외면한 채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행동으로,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일반약을 약국 외에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등에서 구입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은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추진해온 서비스 선진화 방안 중 대표적인 경우다. 따라서 일반약의 약국 외 판매는 허용돼야 한다. 그런데 약사회가 “약은 반드시 전문가인 약사가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며 강력 반발하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약사회는 전국 227개 분회로부터 심야당번제를 지키겠다는 서약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약국에 대해 어떤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벌칙도 없다. 그렇다면 이번에 약사회가 발표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정부가 일반약의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해도 좋다는 각서라도 써야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