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지금까지 세 번 이사를 했다. 할 때마다 너무 힘이 들어서 ‘이게 정말 마지막이야’라고 되뇌지만 얼마 전 부득이한 사정으로 또 한번의 이사를 결심해야 했다. 갑자기 쓰러진 시아버님 때문에 시댁 가까이로 이사를 가야했기 때문이다. 살던 집을 내놓고 이사 갈 집을 알아보고 이삿짐센터를 알아보고 한 것이 한달쯤 전인데 벌써 이사날짜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고 생각하니 막막해진다. 어떻게 이사를 해야 하나, 정리는 또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집안을 휘휘 둘러보는 것도 요즘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 중 하나다. 요즘은 이삿짐센터가 정리까지 다 해 주어서 주인이 손댈 것은 별로 없다고 하지만 이삿짐센터 사람들은 있던 자리 그대로 물건을 넣어두기 때문에 이사 가기 전 이쪽 물건들이 먼저 정리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몇 번의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이 때문에 이사날짜가 다가올수록 직장에 공부까지 병행해야하는 나는 시간에 쫓겨 공연히 마음만 바쁘다.
며칠 전에는 뒤 베란다를 정리하고 그제는 옷가지들과 책들을 정리하고 어제는 장롱 안과 서랍 속을 정리했다. 여기저기 넣어두고 살 때는 몰랐는데 막상 이사를 하려고 이것저것 꺼내다보니 어디서 그리 많은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도무지 끝이 없다. 이미 필요 없어진 물건들과 구석에 밀어놓아 먼지만 쌓인 물건들, 철마다 버리지는 못하고 사들이기만 한 옷들로 서랍장이 가득하다. 전엔 무엇이든 넣을 공간이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다보니 어느새 옷장이나 장롱 속이 휑하고 빈 서랍들도 많아졌다. 문득 내가 왜 그렇게 많은 것들을 쌓아두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에 짐짓 부끄러워진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참 마음의 여유 없이 바쁘게 살았구나 싶다. 바쁘다는 건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내 주변을 정리할 시간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바쁜 일상은 자꾸 무엇인가를 채우게 만들지만 있는 것 위에 채우는 것은 대개가 불필요한 것들이게 마련이다. 그것은 비단 우리 생활 속 물건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비우지 못하고 채우는 것은 있는 것들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함이며 새롭고 참된 것들을 받아들일 공간을 없애버리는 일이다.
무엇이든 비우기 위해서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고 느리게 세상을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여유와 느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것은 아니며 애써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선물처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길을 걸을 때도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걸을 때 그제야 내 시야에 꽃과 새와 몸이 불편한 사람과 세상의 부조리들이 들어오게 되는 것을 자주 경험한다. 그것은 여유를 가지고 마음을 비워낸 자리에 그동안 바쁜 일상으로 미처 보지 못 했던 것들이 새롭게 채워지는 일이며 자신에게 물질적인 것뿐만이 아닌 또 다른 생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태어날 때는 주먹을 움켜쥐고 태어나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주먹을 다 펴고 그 안에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을 생각할 때 내 주변이든 자신의 마음이든 살면서 무언가를 쌓기만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소중하고 참된 진리를 잃어버리고 사는 일이 아닐까. /임봄 시인
▲ <애지> 등단(2009년) ▲ 한국문예창작학회 회원 ▲ 호접몽 동인 ▲ 고려대학교 인문정보대학원 석사과정 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