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남매가 옹기종기 앉아 눈이 몰리는 순간이다. 아버지 양복 주머니에서 두둑한 봉투가 나오고 “자, 많이 도와준 니들도 용돈 받아야지” 천 원짜리 한 두 장씩이 나눠지는 순간! 참, 화기애애하다.
나눠줄 수 있는 아버지의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고 인정 받았다는 푸근한 존재감에 행복해 하는 아이들, 그 모습 바라보는 어머니의 만족감이 더해 온 가족을 흡족하게 했다. 내게 월급봉투란 그렇게 무언가 희망적이고 푸근한 온정으로 남아 있다.
온라인 매체가 판을 치는 요즘, 한 달 동안 일한 대가로 현금이 담긴 월급봉투를 받아 보는 일은 드물다. 계좌이체, 무통장 입금, 홈뱅킹 등의 경로를 통해 내역조회 또는 명세서란 이름으로 월급이 건네질 뿐이다. 삶이 팍팍해질수록 한 달에 한 번씩 월급으로 받아오던 풋풋하고 넉넉한, 배가 불룩한 그 월급봉투가 자꾸 그리워진다.
월급을 받는 날은 그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가슴 뿌듯한 하루가 된다. 불룩한 월급봉투 가슴 안주머니에 든든하게 품고 동료들과 소주 한 잔으로 흥을 돋운 후 집으로 들어가면 가족들의 얼굴이 상기돼 눈빛조차 빛나 보인다. 삼겹살 몇 쪽에 김치찌개 밥상도 그날만큼은 당당하게 받으며 가장의 자존감을 한 것 누려보는 것도 그 월급봉투 덕분이다. 평범한 서민의 가장에겐 한 달에 한 번 받는 월급봉투의 위로는 가히 무시할 수 없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월급봉투가 편의성과 위험성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서서히 사라지는 순간, 서민 가장의 권위도 차츰차츰 무너졌다. 월급 명세서조차 스스로 프린트 해 봐야 하는 현실, 세금과 본봉과 수당이 적나라하게 벗겨진 알몸처럼 고스란히 드러난 월급 명세서는 가장을 마치 심사평을 기다리는 오디션장의 대기자처럼 긴장하게 한다. 적은 돈일지라도 현금으로 담긴 봉투였다면, 더하여 환하게 웃으며 수고했다는 인사말과 함께 전달된다면 각박한 현실에서도 잠깐의 미소를 머금을 수 있을 텐데, 편리성을 추구하는 전자매체는 그런 잠시잠깐의 진통제 같은 여유마저 앗아가 버린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문화도 유행도 사람들의 의식도 변화했다. 한반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 이래 서민문화의 바탕이 됐던 종교의 변화과정만 보아도 가히 짐작해 볼 수 있다. 토테미즘에서 불교, 유교, 천주교, 기독교 등의 전파 과정을 거쳐 현대에 이르러 다양한 종교를 바탕으로 한, 개인의 개성과 합리주의를 주장하는 시대까지 숱한 문화의 생성과 소멸이 이뤄져 왔다. 봉투에 돈을 담아 월급을 주고받는 행위 또한 그 변화의 과정 중에 사라져 가는 작은 일상의 문화에 해당 될 뿐일 텐데 자꾸 그리워지는 건 그 월급봉투에는 돈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성과 예의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냄새가 나는 인간적인 문화를 놓치고 싶지 않은게 아닐까.
“저희는 월급을 편지와 함께 봉투에 현금으로 넣어 주셔요. 매월 따뜻한 월급봉투를 받는 셈이죠.”
며칠 전 동네 헤어샵 스타일리스트가 하는 말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 환한 미소가 아직도 내 가슴에 사진처럼 남아있다. 이번 달엔 열심히 일한 대가로 현금이 담긴 월급봉투를 환한 미소와 함께 받아보고 싶다. /이상남 수필가
▲ 평택 문협 회원 ▲ 독서·논술 지도사
▲ 독서 논술 교육원 원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