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개봉한 영화 ‘굿바이 보이’는 1980년대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세상에 눈을 떠가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성장영화다. 영화는 이문세의 히트곡 ‘소녀’와 ‘죠다쉬’ 청바지가 유행하고, 5공청문회와 최루탄이 등장하는 80년대를 거치며 30~40대들이 어떻게 어른이 돼왔는지를 보여준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개 같은 인생’이란 제목으로 상영돼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이 영화는 1980년대 말 열여섯 중학생 진우의 이야기다. 술주정뱅이에 만년 백수인 아버지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 그리고 가족에 대한 증오와 세상에 대한 분노를 품고 살아가는 고등학생 누나와 함께 진우는 청소년기라는 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이 영화가 남학생들의 거친 성장기를 다뤘다면 개봉 한 달 만에 관객 4백만 명을 돌파한 ‘써니’는 7080세대 여성들의 학창시절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꿈과 우정을 그렸다. 지금은 올드팝이 되어버린 외국 팝송과 가요 등 추억의 노래들이 영화 전반에 흐른다. 이 음악들은 영화의 재미와 감동을 배가시키면서 흥행의 숨은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방송의 인기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도 추억의 노래들을 미션곡으로 선정하고 있다. 10~ 20대들에게는 노래의 참 맛을 깨닫게 해주고, 30∼50대는 이 노래들을 들을 때마다 가슴 짠한 추억여행을 떠난다. 이렇듯 요즘 영화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추억의 노래들이 뜨거운 인기를 끌게 된 데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방송된 ‘세시봉’ 특집 프로그램이 중심에 있다.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등 ‘세시봉’ 멤버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적으로 엄청난 ‘포크송’ 열풍을 몰고 왔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뿐 만이 아니다.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혼성그룹 ‘아바’의 명곡들로 구성해 몇 해 전 개봉한 ‘맘마미아’는 전미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영화 ‘맘마미아’가 개봉된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가수 겸 영화배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새 앨범을 내놓았다. 같은 시기에 그녀보다 훨씬 젊은 인기 여가수인 머라이어 캐리와 마돈나 역시 신보를 내놨다. 하지만 스트라이샌드의 앨범은 이들을 제치고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요즘 우리나라 문화계의 키워드는 단연 ‘추억’이다. 가히 ‘추억 신드롬’이라 부를 만하다.‘아름다운 추억을 가진 사람은 결코 타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추억에 의존하는 것은 늙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