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는 선배에게는 어여쁜 대학생 딸이 하나 있다. 그런데 이 아가씨가 성격, 외모, 공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소위 말하는 ‘엄친딸’이다. 그래서인지 주위에 따르는 청년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선배는 연애를 통해서도 인간관계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딸의 이성교제에 관해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취해 왔단다. 그런데 얼마 전 선배는 딸이 두 명의 남학생과 동시에 사귀는 것 같아 작정하고 진지한 대화를 시도했다고 한다.
“얘야, 엄마는 연애도 인생공부라 생각해. 그동안 지켜봤는데 동시에 두 사람을 만나는 건 아니지 않니?”
“엄마, 그건 오해야. ○○는 내가 진지하게 사귀어 보고 싶은 남자고, △△는 그저 친구일 뿐이야.”
“그런데 네가 친구로 생각하는 △△도 너를 단지 친구로 생각하고 만나는 거니?”
“음... 걘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
“그럼 걔한테 너무 가혹하지. 네가 친구로 잘해주는 걸 걔는 네가 연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로 오해할 수도 있잖니. △△한테는 네 호의가 희망고문이 될 수도 있어.”
“희망고문? 그럴 수도 있겠네. 다음에 만나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게.”
이제 보름 남짓 지나면 공인으로서의 각오를 다지며 시의회에 발을 들여놓은 지 꼭 1년이다. 지난 일년, 뒤돌아보면 어설프고 두서없이 바쁘기만 했던 시간이었지만 고무적인 변화도 있었다.
결의에 찼던 1년 전, 나는 시민의 공복으로 해야 할 지침들을 마음 깊이 새겼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요즘, 해서는 안 될 지침 몇 가지를 새로이 만들 수 있게 됐다. 그 금기목록의 제1항이 선배언니가 딸에게 일침을 가했던 바로 그 ‘희망고문’이다.
표를 먹고사는 선출직들의 가장 큰 딜레마는 지키기 힘든 약속인 줄 알면서도 약속해야 하는 숙명 아닌 숙명이다. 하지만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빈 약속은 민원인들에게 속절없는 희망을 갖게 하고, 결국에는 더 큰 실망을 낳게 된다는 것을 의정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민원을 접하면 우선 나는 할 수 있는 일과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할 수 없는 일(해서는 안 될 일 포함)로 나누기로 했다. 그리고 3번째 항에 걸리는 민원은 최대한 공손하지만 단호하게 있는 그대로 알릴 것이라 다짐해 본다.
임기 1년차 선출직의 이 결의가 끝까지 견지될 수 있을지 장담은 아직 이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설적이고 호전적 성격의 소유자로 ‘철의 여인’으로 불리던 영국총리 마가렛 대처의 충고는 나의 다짐을 곧추 세워준다.
“남들의 호감을 사야 한다는 유혹에 빠지지 말고, 존경받는 대상이 되거나 차라리 두려움의 대상이 돼라.” /박완정 성남시의원(한·행정기획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