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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환생과 부활

 

우주를 육안으로 보면 웬만한 크기의 행성들은 둥근 원형의 형상이다. 소행성이라는 규모가 작은 것들만 모양이 기다랗게 생겨 둥근 원형과는 거리가 멀 뿐이다. 따라서 원형의 형상은 원만한 포용성이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원형(圓形) 형상의 추상적 의미도 또한 중요하다. 원만(圓滿)이란 의미를 띠고 있다. 관점이 다를 수 있지만 주역(周易)에 ‘원형이정(元亨利貞) 만사형통(萬事亨通)’이란 구절이 나온다. 이를 도형(圖形)으로 해석하면 둥근 원형의 울타리 안으로 각진 것들이 포함돼 마찰로 뾰족한 것들이 닳아 원형을 닮아간다. 즉 원형은 통합과 통일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처럼 물리세계에서도 원형은 최고의 존재태를 보여주는 것이고 추상세계에서도 통합과 종합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종교도 구경(究竟)에 따라 나뉘지만, 원형적 통합적 사고는 필요하다. 말하자면 제 종교는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형상적, 방법적으로는 다를 수 있겠지만 궁극의 구경(究竟)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자기중심적 사고에 갇혀 열린 우주와 생명의 구경을 논하는 어리석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환생(還生)은 주로 불교계에서 다뤄지는 개념이다. 사후(死後)에 인간으로 다시 태어남이다. 이런 윤회사상을 기독교계에서는 거부한다. ‘어찌 인간이 윤회를 거듭하느냐’고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좀 더 넓게 보자. 예수님은 하나님이 죄에 빠져 허덕이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동정녀 마리아 몸을 빌려 인간으로 환생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기독교사회에서 불교사회를 비난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비난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마찬가지로 부활은 기독교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예수님은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여 승천, 성령이 됐다는 점인데, 이런 부활사상을 불교계에서는 거부한다. 어찌 죽은 육신의 몸이 부활해 승천하겠는가?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마치 오늘날 과학 세계의 이론과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좀 더 넓게 보자, 불교에서는 환생과 윤회를 믿지 않는가? 구체적인 형상이 다를 뿐이지 예수님의 부활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불교사회에서 기독교사회를 비난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종교 간의 대립과 갈등,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나타나는 것은 세계를 근시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미시적(微視的)으로 보면 다양한 형상들이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비교·대조하거나 분류·구분을 해놓아야 대상을 제대로 인식했다고 위안을 삼는다. 말하자면 인간의 보는 눈이 근시안(近視眼)이라 자신만이 본 것이 절대적이라는 오만한 편견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세계를 보는데 현미경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망원경이 있지 않은가? 이 망원경에 현미경을 부착하면 아주 먼 거리의 사물까지 확대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멀리 있는 것을 보는 심안(心眼)이다. 둥글게 보이니 세상을 둥글게 원형이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어떨까? /진춘석 시인

▲1992년 시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평택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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