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오아시스 도시인 투루판(吐魯番)은 해발이 마이너스(-) 154m로 중국에서 가장 낮고, 가장 더운 곳이다. 그러나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2천2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도(古都)인 투루판은 맛있는 포도로 유명하다. 이곳 투루판에서 동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화염산(火焰山)이 있다. 이름처럼 한여름에 지표면의 온도가 섭씨 80도에 육박하는 불붙는 땅이다. 위구르인들은 화염산을 ‘쿠즈고다로(Kuzgodaro)’, 즉 ‘붉은 산’이라고 부른다.
한눈에도 시뻘건 모습이 화염산을 실감케 하는 이곳을 관광객들이 찾는 이유는 ‘서유기(西遊記)’의 주요무대이기 때문이다. 삼장법사 일행에 천축(天竺)으로 향하면서 겪는 무용담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이 바로 이곳 화염산에 얽힌 이야기다.
손오공이 화염산의 불을 끌 수 있는 파초선(芭蕉扇)을 얻기 위해 나찰녀(羅刹女), 우마왕(牛魔王)과 천지가 진동할 정도로 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압권이다.
우리에게 ‘상실의 시대’, ‘1Q84’로 잘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1988년 그리스와 터키를 여행하고 나서 쓴 책이 ‘우천염천(雨天炎天)’이다. ‘비오는 그리스의 성지에서, 불타는 터키의 변방에서’라는 부제(副題)가 말해주듯 ‘우천염천’은 그리스 아토스 섬에서 만난 대책없는 장대비와 터키를 여행하면서 겪은 불볕더위를 가리킨다.
얼마나 여행이 고통스러웠으면 ‘염천’이라는 단어를 썼을까 싶지만 하루키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곳에는 독특한 공기가 있었고, 보람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존재감이 있었고, 그들의 눈은 살아있는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곳에서 대부분의 일들은 예측이 불가능했고, 규칙은 대부분 허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기상청은 지난 20일 서울과 경기·강원·전북 등 일부 지방에 정오를 기해 폭염주의보를 내렸다. 올들어 처음이다. 폭염주의보는 최고기온 33도 이상, 최고열지수 32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발표된다. 최고기온 35도 이상이 2일 이상 지속되면 경보가 내려진다.
날씨가 무덥다 보니 대개의 사람들은 다른 때 보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열을 받는다. 박완서의 수필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가 무색할 정도다. 이런 상식 밖의 일상에서 시비를 거는 쪽은 대체로 소인배들이다.
특히 소인배일수록 상대를 열받게 하면서 스스로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그렇다고 열받을 필요까지야 있겠는가. 가치없는 일은 무대응이 상책이다. /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