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 남한산성 복원 사업을 추진한지는 꽤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성곽의 복원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남한산성내 유적 및 유물발굴사업이다. 초기백제 연구의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발굴사업이 햇볕을 본 것은 지난 2001년 한국토지박물관이 경기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남한행궁지(南漢行宮址)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백제토기가 다량 출토되면서부터였다. 그것은 남한산성에서 출토한 최초의 백제유물이었다.
이에 고무된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경기문화재단 산하 기전문화재연구원 등은 백제 유적 확인을 위한 주변 일대에 대한 확대조사를 요청했고, 그 후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실시된 조사에서 백제의 한성시대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음이 분명한 구덩이 유적 8곳을 확인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 구덩이들은 풍화암반층을 뚫고 내려간 원형 혹은 타원형으로, 일부에서는 적갈색을 띠는 연질(軟質) 혹은 경질(硬質) 타날문(打捺文) 토기류가 출토됐다. 아직 그 정확한 용도는 미상이지만 이러한 구덩이는 최근 이천 설성산성을 비롯한 한성시대 백제 산성들에서 사례가 보고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남한산성이 초기 백제유물에 대한 학계의 갈증을 풀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남한산성의 역사적 유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병자호란 당시의 치욕적인 항복장소로만 알고 있는 게 고작이다. 그러나 남한산성은 단순한 항복의 장소가 아니라 쇠약한 국력으로 인해 전세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외세에 맞서 무려 45일간이나 항전했던 곳이다.
그에 앞서 남한산성은 초기 백제의 수도를 방어하기 위한 천혜의 요새이기도 했다. 예로부터 서울을 지키는 외곽의 4대 요새가 있었는데 북쪽의 개성, 남쪽의 수원, 서쪽의 강화, 동쪽의 광주가 바로 그것들이다. 그중 동쪽의 광주에 위치한 게 바로 남한산성이다.
따라서 남한산성에 초기백제의 유물이 다량 묻혀있을 것이란 추측은 당연한 것이다. 이제 비로소 본격화되기 시작한 산성의 유적과 유물발굴사업이 성과를 거둬 초기백제연구의 전기를 마련됨은 물론 경기도의 자랑스런 문화유산 남한산성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