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지연 ·학연 등 일차 집단적 연고를 다른 사회적 관계보다 중요시하고, 이런 행동양식을 다른 사회관계에까지 확장·투사하는 문화적 특성을 말한다. 연고주의의 뿌리는 가족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연고주의는 조직 내에 가족적·친화적 분위기를 조성해 인간 관계를 개선하나, 파벌적·할거주의적 행태를 조장함으로써 대내외적 정책 및 조직관리의 공평성과 합리성을 저해하는 역기능을 초래한다.
현실의 우리사회 문제는 아직도 혈연, 지연, 학연 등의 끈을 우선하는 연고주의가 만연하는데 있다. 객관적 원칙이나 합리적 능력평가보다는 어느 지역, 어디 학교, 어떤 부처 출신이냐가 우선기준이 되고 자기들끼리 똘똘 뭉친다.
왕따는 아이들이 아니라 지도자들이 만들어 내는 부정의 산물이다. 특정부처나 고시출신들의 패거리 문화, 정실인사, 법조삼륜의 유착관행이 다반사다. 요즘 여기저기서 저축은행 부실사태 이야기로 시끌시끌하다. 정치권에서도 서로 “네 탓”이라고 떠넘기기 바쁘다.
어디서도 “그래 우리 탓이다”라고 하는 곳이 없다. 왜냐하면 모두가 가족관계는 물론 정계, 재계, 학계가 얽히고 설켜있는 연고주의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평소엔 국민의식의 선진화를 역설하다가도 정작 투표할 때는 ‘우리가 남이가!’ 하는 정서에 쏠려 특정후보에 몰표를 주며, 선거후에는 보은성 인사, 보복성 인사가 공공연하다.
직장에서도 업무능력보다는 줄서기, 줄타기에 능한 사람이 ‘이것이 진짜 실력’이란 듯 잘 나가는 풍토다. 공기업, 금융기관, 연구소, 대학 등에서 유행처럼 실시하는 공모제나 오디션도 특별한 연고나 배경 없이 순진하게 나섰다가는 들러리서기 십상이다.
대부분 공개되지 않는 밀심사이다. 어디 이뿐인가? 우리사회는 하다못해 병원 입원실이나 장례식장 예약도 끈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다.
이 같은 연고주의는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각 분야에 깊이 뿌리박고 있어 갈등과 분열, 부정과 비리를 조장하고 건전한 경쟁풍토와 공정한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우리국민의 70%이상이 한국사회가 불공정한 사회라고 보는 이유는 바로 이 같은 연고주의로 인해 국민 신뢰도가 낮은 데 근본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붕당과 당쟁을 일삼다가 외침에 시달리고 나라를 망친 우리의 불행한 과거 역사도 바로 연고주의의 병폐 때문이 아니었던가.
물론 연고주의가 프로야구단이나 동창회처럼 애향심, 애교심 등 정서적 유대나 친화적 분위기를 통해 인간관계를 개선하고 소속감과 단결력을 높이는 등 긍정적 기능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속성이 파벌적, 배타적 행태를 야기하여 사회갈등을 조장하고 공평성과 합리성을 저해시켜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심각한 역기능을 초래하는 게 문제다.
외국에도 연고주의(nepotism)가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우리국민은 서구적 개인주의와 합리적 가치관보다는 유교적 가족주의 및 권위주의와 함께 비합리적, 감정적 성향이 강해 연고주의에 쉽게 빠져들고 그에 따른 병폐가 유달리 심한 경향이 있다.
비공식적 연줄관계는 모든 공적인 시스템 작동을 붕괴시키며 원칙부재 사회, 예측불가능성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연고주의 극복 없이 우리 사회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연고주의 극복을 위해 의식이 바꾸어야 하고 의식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과감한 제도적 개혁이 따라야 한다. 사람은 한평생 수많은 인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문제는 이러한 인간관계에서 본능적이고 회귀적이고 폐쇄적인 연고가 아니라, 생각을 같이하고 취미를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생산적이고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관계성을 창출해나가자는 것이다. /김경우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