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까지 러시아는 음악의 불모지나 다름이 없었다. 이런 러시아 음악계의 사정은 차이콥스키(1840~1893)의 등장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다. 서양음악의 전통적인 기법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러시아 고유의 분위기를 잃지 않는 세련된 음악을 창조함으로써 차이콥스키가 등장한 이후 러시아 음악은 세계음악의 흐름을 앞서 이끌어나가는 현대음악의 본고장으로 떠오르게 된다.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1958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창설됐다.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폴란드 쇼팽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힌다. ‘클래식 올림픽’으로 불리며 4년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남녀성악 부문을 동시에 개최한다.
우리나라는 1974년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미국 국적으로 피아노 부문에서 2위를, 최현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1990년 성악 부문 1위를, 그리고 1994년 백혜선 대구가톨릭대 석좌교수가 피아노 부문에서 1위 없는 3위를 차지했다. 지난달 30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폐막한 제14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총 19명의 입상자 가운데 한국 음악가 5명이 주요 부문 상위를 휩쓸었다. 성악 남녀 부문에서 나란히 우승한 소프라노 서선영, 베이스 박종민을 비롯해 피아니스트 손열음, 조성진이 각각 2·3위,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가 3위를 수상했다.
특히 콩쿠르의 핵심인 피아노 부문에서 2009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이미 2위를 차지한 손열음이 실내악 협주곡 최고연주상, 콩쿠르 위촉작품 최고 연주상까지 함께 거머쥐며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이지혜는 실내악 협주곡 최고연주상을 함께 받았다. 21년 만에 우승자를 낸 성악 부문의 서선영, 박종민은 최현수 교수의 제자들이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쾌거는 한국 음악이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젊은 음악가들의 빛나는 성적표는 국내 클래식계의 세대교체 신호탄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제콩쿠르 우승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한국 대중가요가 국제적으로 관심을 끌기까지는 가수 개인의 기량뿐 아니라 기획과 홍보력의 덕이 컸다.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우수한 젊은 음악가들이 국제무대에 더 많이 설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의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