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 제도는 기업 이사회에 대한 감시·감독을 강화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일 목적으로 2001년에 도입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아 겨우 외환위기를 넘긴 ‘학습효과’도 컸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이 제도는 대기업의 ‘이사회 거수기’ 관리 방편으로 고착화돼 있다. 기업의 경영 감시는 엄두도 못내고 경영진 의사를 기계적으로 추인하는 ‘법률적 요식절차’로 전락한지 오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지난해 100대 상장사들의 사업보고서에는 사외이사들의 이사회 안건별 찬반이 기록돼 있으나 ‘반대’라는 단어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사외이사들은 거의 모든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지난해 100대 상장사의 이사회 안건 2천685개 중 사외이사의 반대로 부결된 것은 0.15%인 4건이었다.
삼성전자는 작년에 9차례 이사회를 통해 31개의 안건을 처리했으나 사외이사 4명 중에서 반대의견을 제시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사회 산하 내부거래위원회는 대규모 내부거래를 심의했으나 소속 사외이사 3명이 모두 찬성했다.
현대자동차도 작년에 이사회를 13차례 열어 28건을 심의했지만, 사외이사 4명은 한 번도 반대하지 않았다.
최대주주와의 거래 승인, 계열사에 대한 유상증자 등의 안건이 사외이사의 100% 찬성으로 통과됐다.
LG화학 이사회도 임원에게 특별상여금을 지급하는 방안 등 24건의 안건을 심의했지만, 반대의견은 없었다.
이런 폐단을 없애려면 무엇보다 지배주주가 전권을 휘두르는 사외이사 선임 구도를 바꿔야 한다. 대주주 입김을 최대한 배제하고 공익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들을 대폭 늘려야 한다. 사외이사에게도 경영실패의 책임을 묻는 제도적 보완도 생각해 볼 만하다.
그래야 회의에서 손이나 들어주고 거액의 보수를 챙기려는 파렴치한 사외이사들이 사라진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렇듯이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잘못된 것에서 눈을 돌린 제도 운영에 있다. 잘해 보자고 도입된 제도가 ‘그들만의 리그’ 였다니 씁쓸하다. 전관예우는 사회 곳곳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저명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해 놓고 이정도 인물이니 우리회사는 사회적으로 공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병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