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해상왕국 류큐(Ryukyu)는 중국·한국·일본 그리고 동남아를 오가며 중계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평화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수천여 척의 상선을 보유했음에도 군함은 단 한 척도 건조하지 않았다. 무장병력이라고는 열 명이 채 되지 않는 왕실 호위병과 수 십 명의 치안대가 전부였다. 상업을 장려하고 국방을 등한시하는 숭상경무(崇商輕武)정책을 펼친 탓이었다.
일본의 시스마번(현재 가고시마현)은 이러한 기회를 노려 1609년 도쿠가와 막부의 지원 아래 류큐 왕국을 침략해 손쉽게 정복해 버렸다. 이때부터 류큐는 전통적으로 인정해 오던 중국의 왕 책봉권한과 더불어 일본의 내정간섭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결국 1879년에 이르러 류큐는 일본 메이지(明治) 정부의 강압에 의해 오키나와(Okinawa)현 등으로 개칭됐다. 일본에 병합된 것이다. 국방을 등한시 하던 류큐 왕국은 500여명의 일본군대에 의해 이렇게 막을 내렸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 경제는 무역의존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수출입 물량 99.7% 정도가 제주 남쪽해역의 항로를 이용한다. 또한 해양자원이 많은 제주도 남쪽 이어도 근해의 중요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다.
우리 해역을 통과하는 선박의 안전을 확보하고 중요한 해양자원 쟁탈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지난 2007년 노무현 대통령 정부는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친북반미 성향 세력들은 해군기지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환경이 파손되며 특히 미국의 대(對)아시아 제패 전략의 전초기지로 활용 될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 14일 항공모함 ‘스랑’호의 시험항해를 마쳤다. 중국군 기관지 ‘해방군보’에서는 항공모함을 영토분쟁에 과감히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싣기도 했다.
중국은 분쟁 중인 일본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조어도)와 베트남의 쯔엉사 군도(중국명 남사군도)에는 통상적으로 민간 어선을 보내왔다. 그러나 우리 이어도에는 중국 해경인 관공선을 보냈다. 그 만큼 도발의 강도가 높다는 얘기다. 심지어 지난 7월5일에는 이어도 남서쪽 0.8㎞ 지점에서 침몰선반 인양작업을 하던 우리 선박에 대해 작업중단 경고까지 내렸다. 우리 최남단 섬 이어도에 대한 중국의 도발이 본격화됐다는 신호다.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할 경우 인접국을 자극해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는 반대세력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는 순간이 아닌가. 중국은 이미 항모까지 띄웠다. 물론 일본 해상자위대의 전력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의 해군력은 중국·일본과 비교해 3~4배 정도 열세다.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분쟁지역에 먼저 도착하는 것이 대비하는데 이점이 많다. 이어도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서는 21시간(481㎞)이 걸리고, 제주도에서 출동하면 8시간(174㎞)이 걸린다.
중국은 상하이 서산다오에서 출발하면 이어도까지 13시간(287㎞)이 소요된다. 제주기지가 없다면 중국해군이 우리보다 무려 8시간 먼저 도착하게 되고, 제주기지가 있다면 우리 해군이 중국보다 5시간 먼저 도착하게 된다.
또한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전시 보급물자나 증원 병력은 바다를 통해 육지로 전개된다. 그럴 경우 제주도는 최적지다. 제주해역을 침범한 북한 잠수정에 이롭게 할 목적이 아니라면, 이런 전략적 요충지를 우리의 군사적·경제적 생존권을 위협받으면서까지 외국 정부의 탐욕을 배려하는 모순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는다. 앞서 말한 류큐 해상왕국의 역사를 거울삼아 우리도 그들과 같은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다. 역사적 교훈은 돌고 도는 것이니 만큼.
/진종구 프론트라인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