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푸른 가을 하늘이 맑고 투명하다. 그 투명함이 오늘 따라 가슴 속으로 밀려들어 오는 이유는 왜일까.
하늘 뿐이 아니다. 요즈음 내 가슴에는 크고 작은 많은 것들이 들어와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작은 방을 만들어간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추억의 방 그리고 기억의 방. 1976년 우체국에 몸담은 나의 공직생활이 올해 어느덧 정년을 앞두고 있다. 35년 세월 동안 세상은 상전벽해(桑田碧海) 했고, 내 얼굴 또한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능력이 없으니 깊고 얕은 주름이 골망 골망 제 자리를 잡아가며 나와 호흡을 함께 하고 있다.
身老心不老(신노심불노),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말을 떠올리며 창가에서의 단상을 접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문밖에서 경쾌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국장님! 오늘 소포가 1만2천개나 도착했습니다.”
이번 한 주는 우체국 집배원들이 밤 늦게까지 고생하면서 소포를 배달해야 하는 기간이다. 본연의 임무이기는 하지만 고향에도 가지 못하고 밀려드는 소포배달에 힘들어 지친 모습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렇게 힘든 집배원에게 소포를 수령하는 고객들이 “수고한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주면 힘이 날텐데…
1년에 두 차례. 우체국에서는 설과 추석우편물 소통에 따르는 비상기간이 선포된다. 일반 국민들이 보면 ‘매일 하는 일을 어쩌자고 저렇게 유난들을 떨고 있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평상시 보다 3~4배 늘어나는 소포우편물량은 전 직원이 지원해도 제 시간에 맞춰 고객에게 전달하기가 어렵다. 직원들은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벌써 작업용 빨간 목장갑을 챙겨 작업장으로 내려간다.
명절우편물 소통을 위해 마련된 지하 1층 주차장에는 배달돼야 할 소포와 우편물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다. 올해는 여름 내 흐렸던 날씨 때문에 밭작물과 과일이 많지 않아 고 중량이 적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내 눈에 보이는 우편물은 모두 10~30㎏을 넘나드는 과일상자와 큰 박스들이다. ‘한번 시작 해볼까?’ 생각하는데, “국장님 올라가세요. 저희들끼리 해도 충분합니다”라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설이나 추석우편물 소통 때면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는 집배실장이다.
“왜요, 제가 있으면 불편합니까?” 하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아니요. 저희들만 해도 되는데, 괜히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 하고 말끝을 흐린다. ‘오늘이 아니면 내가 또 언제 이렇게 땀 흘리며, 직원들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집배실장이야 내가 힘들 거라고 생각해 그런 말을 했지만 나 역시 얼마 남아있지 않은 직장생활을 직원들과 함께 조금이라도 더 생활하고 싶은 심정이다. 지금은 우체국이 지식경제부에 소속돼 있지만 내가 처음으로 발령받을 때만 해도 체신부였고, 우정사업본부 발족과 함께 정보통신부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조직이 여러 차례 통폐합·개편됐다고 해서 우체국 본연의 업무인 우편업무가 본질을 달리한 것은 아니지만 정보통신의 혁신적인 발전은 우체국 사업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고 기존의 우체국 사업과 차별화되는 역할이 요구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조직의 변화와 업무의 다양화 속에서 나 역시 현업부서인 우체국과 비 현업부서인 본부를 오가며 35년 동안 여러 차례 보직이 바꿨고, 그 공직생활의 마지막을 수원우체국에서 정리하게 됐다. 수원우체국으로 처음 발령받아 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번의 시무식을 했고, 3번의 설 소통을 치뤘다. 그리고 오늘 내가 함께하는 추석 소통도 3번째이자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착잡한 마음을 어쩔 수가 없다.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올해는 사소한 모든 일들까지도 가치롭게 느껴진다. 事必始終(사필시종) ‘시작이 있으니 반드시 끝이 있다’는 말이 가슴을 울리는 한 해였고, 그 아름다운 갈무리를 위해 나는 지금도 수원우체국 직원들과 함께 부족한 힘이지만 소포우편물을 나르며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추억의 방에 쌓아 놓을 소소한 기억 하나라도 더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공종식 수원우체국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