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의무경찰의 죽음을 애도하고 되돌아오는 승용차 안, 깊은 생각에 잠긴 그는 초점 잃은 눈동자를 들어 스쳐가는 차창 풍경 저 너머를 응시한다. 그리고는 이내 입안을 맴도는 말을 웅얼거리듯 혼잣말로 뱉어냈다. ‘국가적 영웅(National Hero)’, 그가 되뇌고 되뇐 말이다.
다음 날 그는 자신의 부대가 주둔해 있는 동두천시를 찾았다. 집중호우로 갑자기 불어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구하려고 자신을 희생한 사람을 기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인의 숭고한 뜻을 미군장병들도 본받을 수 있도록 미군 캠프 내에 추모비를 건립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동두천시장은 부대정문 내부보다 외부에 추모비를 건립해야 일반 시민들도 추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조건을 붙여 그의 뜻에 동참했다.
이에 따라 미2사단 시설사령관 닷지 대령은 즉시 장비와 인력을 동원했고, 동두천시장은 캠프 모빌 정문 곁의 토지를 제공했다. 이에 뒤질세라 PTP 등 한미 친선단체들도 추모석 구입비용을 부담했다. 삼위일체의 정신으로 그렇게 고(故) 조민수 수경의 추모비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9월 9일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이 열렸다. 추모비 건립을 주도했던 닷지 사령관은 고 조민수 수경의 의로운 행동을 보고받고 지난 2001년 뉴욕에서 발생했던 9.11테러를 떠올렸다고 한다. 사고 직후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현장에 투입돼 먼지로 산화한 소방관들, 그들이 진정한 미국의 국가적 영웅이었다는 것이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미군 지휘관이 우리 의무경찰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감명 받은 것이다. 그리고 주한미군들에게까지 우리의 영웅을 따라 배우도록 독려하게 됐다. 이와는 별도로 국적이 다른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해 달려오는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의 이야기는 오늘도 일본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던져주고 있다. 그 만큼 우리 사회에는 숨은 영웅들이 많다는 얘기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들만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묵묵히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내셔널 히어로우’다.
고 조민수 수경은 지난 7월 27일 동두천 신천변에서 불어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시민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고인은 미군부대 외곽을 경비하던 의무경찰이었다. 순수하고 순박한 고인의 의로운 행동은 그가 경비를 섰던 미군부대 지휘관의 마음까지도 사로잡았다. 그의 죽음은 유족들에게 가슴 에이는 고통을 안겨줬다. 부모보다 먼저 떠나는 것이 가장 큰 불효라는데…. 너무도 슬픈 일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 사회에 던져준 교훈은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요즘 정치권은 나라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는 듯 진흙탕 싸움만 계속하며 시간을 탕진하고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정치권은 이해타산 없이 목숨을 바친 소박한 영웅들의 참모습을 보고도 진정 느끼는 것이 없단 말인가.
/진종구 프론트라인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