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정전사태를 초래한 한국전력이 광고와 판매촉진을 위해 매년 400억원 이상을 써 온 것으로 드러났다. 전력의 생산이나 판매를 독점하고 있는 입장임을 감안하면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공시된 한전의 손익 연결재무제표를 보면 작년의 광고선전비, 판매선전비, 판매촉진비 명목으로 처리된 비용은 407억7천만원이다. 이는 전년보다 9.2%가 늘어난 것이다.
아마도 판매촉진을 해야할 정도로 전기가 남아 돌았던 것이 아니면 알수 없는 곳에 돈을 쓰기 위해 이름만 빌린 것으로 의심할 수 밖에 없다. 한전측의 해명을 보면 ‘여름 냉방기 사용자제 광고’와 ‘전략시설 견학 및 요금시스템 변화 홍보’ 등에 사용된 예산이라고 한다. 그렇다치더라도 다 엇비슷한 ‘광고선잔’, ‘판매촉진’, ‘판매선전’ 등으로 이름을 쪼갠 것은 납득이 잘 안된다. ‘복마전’이라는 소리를 듣게 돼 있다.
한전의 구조적인 문제는 이 뿐이 아니다. 한전은 최근 정기 국회가 열리고 있는 데다 초유의 정전사태까지 발생하면서 연일 난타를 당하는 신세가 됐다. 경영이 방만하다 못해 ‘부재(不在)’수준에 이른데 따른 것이다. 작년 한전의 당기순이익은 721억원의 적자였다. 매년 적자가 되풀이되다 보니 전기요금 인상을 늘 입에 달고 다닌다. 흥청망청 쓰다 돈 떨어지니까 국민들에게 손을 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회 국감자료에 따르면 지식경제부 산하 공기업 60곳 가운데 1억원 이상 연봉자 수가 가장 많은 곳이 한전이다. 무려 758명이나 되고 한국수력원자력, 중부발전, 동서발전, 남동발전, 서부발전 등 한전 관계사들이 100명 이상으로 줄줄이 그 뒤를 잇는다. 이 덕택에 한전의 작년 인건비는 전년보다 12.2%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전 사장을 비롯한 지휘부의 전문성도 도마위에 올랐다.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한전과 11개 자회사의 기관장과 감사 자리 대부분을 낙하산 인사가 차지해 정전 대란의 근본 원인이 됐다”고 주장했다. 최악의 ‘블랙아웃(blackout)’으로 갈뻔한 ‘정전사태’를 보면 한전 구성원들의 기강해이 정도를 읽을 수 있다.
위기일발의 상태를 덮으려 예비전력을 허위보고한 것만 봐도 그렇다. 우선 덮고 보자는 임직원의 보신 때문에 국가수준의 사고를 칠 뻔한 것이다. 보고 체계와 비상상황 매뉴얼 규정도 모두 무시됐다. 우리 몸의 혈관이나 다름없는 전력산업을 책임진 기관으로서 맡은 바 임무의 막중함을 다시 인식해야 한다. 스스로 개혁에 나서지 않으면 외부로 부터 더 큰 아픔을 동반하는 구조개편 요구를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