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사태’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리먼 브러더스는 3년 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파산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어 놓았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한국 경제도 휘청거렸다. 한국은 재정확대와 초저금리 정책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헤쳐 나왔는데 이번에는 유럽발 재정위기라는 끔찍한 복병을 만나게 됐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금융위기로 전이되면서 ‘제2의 리먼사태’가 닥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리먼 사태의 주범은 부동산대출 부실이지만 이번 위기의 근원지는 과도한 정부부채다. 그런 점에서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다. 글로벌 금융시장에 공포심리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정부는 리먼 사태때와 달리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양호해 지나치게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재정건전성이 유지되고 있고,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으며 단기 외채 비중도 리먼때 보다 낮다는 것이다.
한국의 부도 위험이 급격히 커진 것은 금융시장이 크게 취약해진 탓이다. 환율 상승폭은 리먼 사태 때보다 더 가파르고, 주가의 낙폭 또한 더 크다. 지난 23일 현재 원.달러 환율은 1,166.0원으로 지난달 말의 1,066.8원보다 99.2원 급상승했다. 리먼이 파산보호 신청을 했던 2008년 9월의 1∼23일간 상승폭 60.0원보다 39.2원이나 높다. 당국이 시장개입에 나서지 않는다면 환율은 쉽게 1,200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유럽발 재정위기의 충격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그리스는 유로존의 도움으로 겨우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모면하고 있다. 유로존 공조가 깨져 그리스가 디폴트 선언을 하거나 유럽 금융기관의 파산이 현실화되면 한국 금융시장이 지금보다 더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정부가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어 정치권의 리더십을 기대하기도 힘들고 복지 공약만 남발할 가능성도 있다.
당국은 무엇보다 우선 외국계 자금이 갑자기 빠져나갈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금융위기와 외환위기를 다시 겪을 수는 없다. 정부는 한국이 굉장히 긴급한 상황에 있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한-미 통화스와프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이 더욱 악화되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주식, 채권, 외환차입금 등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미국과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하는 등 종합적인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