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고향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의 딸내미가 결혼을 한다고 하여 문산에 다녀왔다.
아침나절 긴 여름이 머물다 간 자리에 어느새 찾아온 가을이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를 붉게 물들이고 밝은 햇살에 묻힌 가을 들녘은 황금물결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강줄기를 따라 늘어선 갈대숲이 바람에 나부끼고 이따금 들에 핀 하얀 억새풀이 차창 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가을이 되면 몇 년 전 전철에서 만났던 어느 할머니가 생각난다. 그날 내가 전철을 타기 위해 지하도로 내려가고 있을 때 할머니는 내 앞에서 커다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짐을 받아 들고 전철을 탔다. 보따리 속에 올망졸망 묶은 비닐 봉지에 빨간 고추와 검은콩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할머니는 어느 시골에서 오시는 길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내게 바싹 다가앉으시며 말을 붙였다. 할머니는 그날 함평에서 홀로 농사를 짓다가 아들이 살고 있는 서울로 아주 올라오는 길이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고향에서 농사일을 하며 아들 여럿을 대학까지 가르치셨다.
그런데 작년에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고향에서 혼자 사시다가 이제는 그것도 힘에 부쳐 농토를 다 정리했다고 하셨다. 평생을 농사 일만 하다가 도시 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며느리와 아들한테 짐이 될 것 같아 걱정이 된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힘은 들었어도 할아버지와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며 서울에서 주말 농장을 가꾸며 살고 싶다고 하셨다.
일평생 오직 자식의 뒷바라지를 하며 사시다가 아들을 찾아 고향을 버리고 올라오시는 할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니 금방이라도 뛰어 나와 얼싸안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할머니한테 그동안 부모로서 할 일을 다 하셨으니 이제는 아들과 며느리와 손자와 함께 행복하게 사시면서 남은여생을 편히 쉬라고 말씀 드렸다. 내가 자랄 때 까지만 해도 나를 낳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공경하고 나이 드신 후에는 반드시 모시고 사는 것은 자식의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급변하는 사회는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바뀌면서 연로하신 부모님의 권위와 공경심이 가정과 사회에서 상실돼 버렸다.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기 싫어 양로원으로 보내는 것은 예사고 여행 중에 버리고 오는가 하면 재산문제 등으로 부모님을 죽이기까지 하는 안타까운 현실 앞에 나는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얼마 후 정차 역을 알리는 안내방송을 듣고 서둘러 짐을 챙기는 할머니의 거칠어진 손마디가 그동안 힘든 농사일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는지 알 것만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배웅하는 나에게 할머니는 잘가라는 손짓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시며 보따리를 들고 내리셨다. 다음 역을 향해 서서히 출발하는 차창너머로 보따리를 이고 발걸음을 옮기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내게서 멀어져 갔다.
저녁나절 서울로 내려오는 길에는 꼬리를 물고 있는 차들로 넘쳐 났다. 여름날 푸르렀던 나무들이 고운 빛깔의 색동옷을 갈아입는 산자락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나는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이 오면 지금도 어느 하늘 아래서 살고 계실 함평 할머니가 생각난다. 그리고 부모님이 살아 계셔야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음을 자연 속에서 배워본다.
/고중일 수필가
▲강원도 철원 출생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졸업 ▲수필로 등단 ▲문학시대 동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기도신인문학상, 성남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