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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 꿈을 주는 의료

 

항암제치료를 받는 환자들을 진료할 때, 이들에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가장 많이 답하는 것이 항암제의 부작용이다. 어떤 환자는 부작용 때문에 불만을 넘어 치료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항암제가 더 이상 듣지 않는 말기상태에 이르러 의사가 “더 이상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을 하면 대부분의 경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 달라’면서 약효가 더 좋은 또 다른 항암제를 써 줄 것을 요구한다.

항암제를 추가로 더 쓰는 것은 생명을 건강하게 연장해 주는 효과보다는 더 큰 부작용으로 환자에게 고통을 야기하고 생명을 오히려 단축할 수 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잘 설득되지가 않을 때, 환자나 가족들의 반응은 객관적으로 항암제치료의 득실을 따지기 보다는 오히려 항암제라는 이름의 ‘꿈’을 포기하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항암제 중단’을 ‘치료 포기’라고 생각 하듯이.

의료행위를 통해 기대하는 꿈에 대해 고대 그리스의 한 철학자는 “의학은 꿈의 산물”이라는 말로 표현했으며, 동양의 ‘불로초’, ‘만병통치약’ 등의 단어도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는 주술사들이 대부분의 의료행위를 맡고 있었고, 서양도 마찬가지로 현대의학이 자리 잡기 이전인 200여년전만해도 의료행위의 상당부분을 종교단체에서 행하고 있었다는 점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 가던 전염병인 천연두는 ‘백신’이 보급되면서 1979년 소말리아의 마지막 환자를 끝으로 WHO가 공식적으로 박멸을 선언한 바이러스 전염병이다. 과거에는 꿈에서조차 생각하기 어려운 현대의학의 쾌거인 셈이다. 또 간이식수술을 통해 말기 간 경변증 환자를 치유하고, 항암제로 백혈병을 완치시키는 등 의학의 발전은 인류에게 큰 꿈을 주고 있다.

하지만 현대의학으로도 치유하기 어려운 암과 같은 난치성 질환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대부분의 암 치료제들이 암을 완치하지는 못하고 단지 몇 개월의 생명 연장 효과만 있을 뿐인데, 가격은 1달에 1천만원을 상회하는 신약들이 많다. 이런 신약중 상당수는 건강보험의 급여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사용하게 되면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야기하게 된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환자에게 이런 신약이 있다는 정보를 주게 되면 돈 때문에 치료를 시도하는 꿈조차 포기하게 됐다고 더 좌절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이 경우 신약이라는 존재는 그들에게 ‘꿈’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불행의 씨앗’ 밖에는 안 된다.

또 다른 측면은 생명을 연장시키는 치료법조차도 더 이상 작용하기 어려운 말기상태에서 환자나 그 가족들은 꿈을 잃지 않기 위해 끝까지 적극적인 의료행위를 수행하기를 원하는 경우이다. 예로, 임종에 임박해 호흡이 곤란해지면 인공호흡기를 적용하고, 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혈액투석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연명시술들이 환자들의 의미 있는 생존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받으며 임종하는 시간만을 연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꿈을 포기하지 못해 환자에게 불필요한 고통만 더하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가장 심각한 상황은 명확한 근거 없이 말기 환자에도 효과가 있는 것처럼 포장된 약품이나 의료기술이다. 문제는 말기 환자들이 끝까지 꿈을 잃지 않으려 한다는 심리를 악용해 개인적 이득을 취득하고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점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헛된 꿈을 파는 의료행위’를 상업적 목적만으로 하고 있는 집단들이 반복해서 출현하고 있다.

의학발전에 기대하는 인류의 꿈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의료기술에 대한 근거평가가 객관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해 꿈을 주기 보다는 불행을 야기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점이다. 제대로 수행된 임상연구를 통해 자료를 제시하고, 체계적인 근거평가를 받아 실질적으로도 ‘꿈을 주는 의료’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허대석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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