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용기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 일제 강점기 때 고위관료였던 할아버지를 대신해 친 손자가 사죄를 한 것이다. 도내에 사는 윤모 씨가 그 주인공으로 윤 씨의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시설 군수를 지내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랐다. 그는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 벽돌 한 장을 올리는 심정으로, 우리 집안의 진실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고하는 것입니다”라면서 참회의 글을 민족문제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렸다.(연합뉴스 18일자 기사) 다른 친일파 후손들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보인 것이다.
지난 2009년 발행된 친일인명사전에는 매국, 중추원, 관료, 경찰, 군, 사법, 종교, 문화예술, 언론출판 등 16개 분야의 친일인사들을 선정했다. 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 명단이 공개되자 후손들과 관련단체들의 반발은 강력했다. 박정희, 방응모, 김활란, 홍난파 등 유명인사들이 대거 포함됐기 때문이다. 친일명단이 발표되자 대다수 국민들은 “친일행적의 책임을 엄하게 묻고 올바른 가치관을 세워야 한다”며 환영했지만 일부 관련 단체나 후손은 “너희가 친일파를 어떻게 규정하냐”며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이 중에는 사실 억울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엄혹한 일제 강점시기 살기 위해서는 친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변명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누가 뭐래도 할 말이 없는 이완용, 송병준 등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도 있다. 그리고 일부 친일 매국노 후손들도 그 후손답게 일제가 하사한 땅을 도로 찾겠다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기도 했었다. 참 파렴치한 사람들이다. 사실 친일 매국노 후손들은 재계와 정계, 문화계, 학계에서 지금도 떵떵거리며 큰소리치며 활동한다. 반대로 독립투사 후손들은 극히 빈곤한 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
‘이 땅에 다시 일본이 침략하면 나는 친일파 노릇하며 살 것이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처럼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고 싶지 않다. 친일해도 대한민국에서는 떳떳하게 살수 있으니...’ 몇 년전 인터넷 사이트에서 읽은 글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런 때에 ‘저는 친일파의 손자입니다.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 합니다’라는 윤씨의 공개고백은 뭉클하다. 친일파와 그 자손들은 호의호식했지만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어렵게 살고 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분개했는데, 최근에 자신이 친일파 후손임을 알게 됐다는 윤 씨의 사죄를 다른 친일파 후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척이나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