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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가을이야기

 

가을이 깊다. 거리의 풍경이 바뀌듯 사람들의 행보에도 가을이 묻어난다. 누군가는 가을의 정취에 빠져든 듯 낙엽처럼 걷고 누군가는 옷섶을 여미며 바람처럼 간다. 딱히 가을만의 정서라고 말할 수 없지만 은행잎 하나 주워들고 지난 계절의 길을 거기서 찾는다. 직립의 서정을 제멋대로 연출하며 노랗게 물든 잎들 속에서 화석이 될 시간을 헤아려본다. 유난히도 춥던 지난겨울의 끝 연둣빛 작은 몸짓으로 햇살을 불러들이며 거리를 환하게 밝히던 새순들이며 그 잎이 무성해지기도 전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던 폭우에 꺾이고 부러진 가지를 추슬러 이젠 은행나무만의 내력으로 가을을 물들인다.

은행잎 덮인 거리를 걸으며 그리움의 단서를 찾는다. 가끔은 위조지폐처럼 끼어들어 당혹스럽게 하기도 하고 가끔은 목마른 그리움으로 가슴 깊은 곳 애써 봉인한 기억을 들추기도 한다. 무심히 넘기던 책갈피에서 찾아낸 그런 그리움과는 다른 바람에 날리는 풀씨 한 줌에도 걸음이 멈춰지고 꽃 순을 머금은 채 서리에 젖은 푸성귀에 햇살을 뿌려주고 싶은 그런 가을이다.

계절이 깊다는 건 가슴에 담아야 할 사연이 많기 때문이다. 노란 현기증에 발목이 잡힌다는 건 그만큼 사랑했다는 증거다. 유리문 안으로 몰려드는 햇살과, 푸른 잡담을 섞어 마시던 커피와 함께해도 목말랐던 시간, 포장마차에서 굽던 전어와 마주치던 소주잔과 무심히 넘겨다본 표정에서 읽혀지던 또 다른 고독을 외면하며 딴청을 피우던, 허름한 통기타와 저음의 노래가 어울리던 친구였다. 연탄에 구워지던 전어를 보면서 바다의 내력을 캐내려 하고 소금이 되는 세상을 말하며 이 시대의 순수를 지향하고 열망했다.

학생운동을 피해 백령도에서 보낸 얼마간의 시간을 기억해낼 땐 목에 힘을 주었고 연거푸 소주를 마시며 격분하기도 했다. 인생은 썰물과 밀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며 달의 날짜를 누가 더 잘 읽어내느냐가 그 사람의 삶이 어디에 놓여 질지를 결정한다고 흰소리를 치던 사람. 그곳에서의 젊어 한때가 삶에서 큰 지렛대가 되었던 것처럼 부풀려 말할때면 넙두둑한 얼굴에 생기가 돌곤 했다. 우리는 그렇게 몇 해의 가을을 보내고 또 보냈다. 계절들이란 고단하다. 고여드는 그리움을 단속하기 위해 커피를 마시고 볼륨을 높여 음악을 듣고 건성으로 책장을 넘기는 사이에도 푸른 것들을 반납한 나무는 뿌리로 깊어질 것이고 낙엽은 또다른 무엇이 되기 위해 제 자리로 향할 것이다.

구름이 옮겨가는 자리로 바람은 이동할 것이고 우리는 새로운 가을 이야기를 찾아 기억의 층들을 캐내고 또 단속하고 그렇게 숱한 가을을 실종시키며 중년의 한때를 지켜갈 것이다.

/시인 한인숙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2006년) ▲안견문학상 대상(시)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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