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술수준은 세계 정상급이다.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은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시장에서 그 기술력과 성능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이러한 세계적인 기술력이 반영된 한국제품의 헤택을 받고 있기는 커녕 같은 제품을 오히려 외국에서보다 높은 가격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구입하는 격이어서 ‘한국 소비자는 영원한 봉’이라는 말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자동차가 미국시장이나 유럽시장에 비해 판매가격이 높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수출용에 비해 각종 편의장치 등이 덜 장착돼 있다는 사실도 이제는 익숙한 이야기가 됐다. 수출주도정책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잘못된 수출정책이 국내소비자들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 소비자를 봉이라고 생각하는 곳이 자동차 시장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삼성과 LG전자의 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가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에서 훨씬 더 비싸게 판매된다고 한다. 제품이 먼거리까지 가다보면 수송비와 같은 유통비용이 붙어 가격이 높아지는 것이 상식인데 산지보다 해외에서 더 싸다고 하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소비자시민모임이 지난 8월 11일부터 9월 5일까지 미국과 일본, 영국 등 세계 18개국 주요 도시에서 LED TV, 스마트폰, 태블릿PC, 화장품, 자동차 등 14개 품목 48개 제품의 국제물가를 조사한 결과 이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조사대상 48개 제품 중 16개 제품의 국내 가격이 세계 주요 도시 가운데 상위 5위 안에 들었다고 한다.
삼성 46인치 LED TV의 경우 국내 판매가격은 291만원으로 미국이나 독일, 프랑스, 말레이시아 등보다 60만원 이상 비쌌다. LG전자의 47인치 LED TV도 다른 나라보다 대체로 30~95만원 비싼 값에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도 TV와 마찬가지이다. 한국 소비자를 ‘봉’으로 여긴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이런 ‘이상한’ 가격은 제조업체의 시장 독과점적 지위와도 무관하지 않다. 삼성과 LG전자는 TV 내수시장의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그야말로 ‘배짱’ 장사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위치이다. 공정거래법상 어떤 문제가 없는지 세밀하게 조사해봐야 할 사안이다. 이에대한 해당 업체들의 변명도 궁색하기 그지없다.
유통구조 개선이 시급한 문제다. 제조업체들은 가격의 왜곡현상을 유통구조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소비자의 손에 제품이 들어가기까지의 전과정을 관리해야만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FTA 등으로 해외 경쟁 제품의 국내 시장 유입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만큼 소비자를 ‘봉’으로 여기다 자칫 믿었던 내수시장마저 잃을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