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모이는 날 가장 중요한 안건 하나, ‘아빠의 노후를 즐겁게 해서 보다 나은 가정의 행복을 찾자’이다. 그렇다고 그가 즐겁게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막집이나 마을회관에서 시간을 때우는 것보다 취미를 가지고 움직이면 좀더 뜻 있게 노후를 보낼 수 있지 않은가 하는 뜻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평생 농사가 천직이었는데, 농사가 줄어들고 기계화돼 일이 줄어들면서 왠지 날이 갈수록 출입이 줄어드는 남편에게 식구들이 하는 걱정이다.
여자들은 나이가 들면 밖으로 나가고,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 안으로 든다는 항간의 말이 새삼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렇다고 자꾸 밖으로 내몰 수도 없는 일이어서 때때로 남편에게 주문을 하기도 한다. “우리 뭐 재미있는 거 하나 합시다. 공동으로 할 수 있는 거, 등산을 다닐까? 아님 수영장엘 다닐까?” 될 수 있으면 함께 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이야기를 꺼내면 등산은 어째서 못하고 수영은 어째서 못한다며 핑계를 대기 일쑤여서 그를 움직이게 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젊은 날 새마을지도자, 이장, 통장, 영농회장 등 봉사활동을 20년 넘게 해 온 그다. 아직은 집에만 은둔해 있을 때가 아니다. “여보, 문화센터에 붓글씨 쓰러갑시다. 아니면 탁구를 배우던지... 사진 찍는 거 배워서 여행도 하고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좋으니 함께 합시다”했더니 사진 찍자는 말에 잠시 솔깃 하곤 또 그냥 넘어간다. 나는 남편의 즐거운 취미생활이라면 비용이 좀 드는 골프를 한다고 해도 밀어주겠다고 제의를 해도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느 날 육촌 시동생이 활터에 함께 다니자고 주선을 했다. “이 사람아, 한량들이나 하는 활놀이를 내가 왜 해”하며 근처도 가지 않았다. 마치 못 할 소리를 하기라도 한 듯 핀잔을 주곤 했다. 남편은 요지부동이다.
그런데 며칠 전, 밖에서 들어오는 그가 얼굴에 환히 웃으며 기다란 헝겊 주머니를 거실에 내려놓는다. “그게 뭐예요?” 의아하게 들여다보자, “이 사람아, 뭐긴 뭐야. 활이지”한다. “아니, 웬 활을?”하고 묻자 “응, 이제부터 국궁을 하기로 했어. 활 쏘는 것도 전신운동이 된다는데? 팔의 근육이 단단해지고 다리, 허리 모든 부분에 힘이 가고 아마 배도 들어가서 아주 좋다고 그래.” “와아, 그래요. 잘 했어요. 축하해요. 애들한테도 이 소식을 알려야겠네.”
활터 양지정은 건너 마을에 있다. 활은 가까운 친구 분이 기념으로 사주셨다고 한다. 그리 큰 크기는 아니다. 처음 만져보는 활의 느낌이 팽팽하다. 활도 배워서 쏘는 정도에 따라 활의 크기를 늘여간다고 한다. 우리 가족의 즐거운 생활을 위해 구제해준 녀석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딸들과 아들이 마치 경사라도 난 듯이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남편은 그렇게 요지부동을 움직여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나이 들어 한 가지 취미를 갖는 다는 일. 남은 시간이 침체되지 않고 활기찬 생활의 활력소가 되며 건강하게 사는 일이다. 늘 걱정하던 일이 한 가지 줄어들었다.
남편이 새로 갖게 된 취미생활이 새로운 삶의 시위가 돼 넓기만 한 허공을 힘차게 날아가는 나날이 되기를 빌어본다.
/시인 이연옥
▲한국문인협회 시흥시지부장 ▲시집 <산풀향 내리면 이슬이 되고> <연밭에 이는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