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대동아전쟁 당시 일본과 중국, 남양 등지로 끌려갔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국적포기 움직임은 예사로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민족의 상징이면서 뿌리인 국적을 포기하고자 할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8.15 58주년을 맞아 광주 ‘나눔의 집’에서는 ‘평화와 나눔’의 한마당 잔치가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굴욕의 세월을 살았던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 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위안이 되지 못했다. 지금 위안부 할머니들은 야수적인 만행을 하고서도 보상금 지급을 외면하고 있는 일본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받아내기 위해 국적포기를 준비중이기 때문이다.
일제에 의한 여자정신대의 야만사는 일반에게 알려진 것 보다 퍽 오래다. 1931년 조선총독부와 결탁한 매춘업자들이 우리 나라 여성을 모집해 위안부로 부려먹다가 전쟁 막바지인 1944년 8월23일 ‘여자 정신근무령’을 발동해 만 12세 이상 40세 이하의 배우자가 없는 여성을 모조리 전쟁터로 끌고 간 것이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했으므로 거부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 때 정신대로 끌려간 숫자는 대략 2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은 ‘인간’이 아니라 ‘군수품’에 불과했다.
해방 직후에는 동남아 일대의 전쟁터에 그대로 버려지거나, 추악한 꼴이 탄로날 것이 두려워 학살한 경우까지 있었다.
따라서 당사자는 물론 우리 정부로서도 위안부문제를 청산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1962년 박정희 군사정권은 그해 11월 12일 김종필·오히라(大平)비밀회담을 통해 무상공여 3억달러, 차관 3억달러 등을 받는 조건으로 대일청구권 문제를 매듭짓고 말았다. 일본은 무상공여 자금 가운데 보상금이 포함되어있으므로 추가 보상은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 정부도 위안부 보상문제에 관한한 소극적이다.
결국 위안부 할머니들은 국적을 포기하고, 비 한국인 자격으로 일본 정부에 보상금을 청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녀들 가운데 많은 할머니들이 이미 세상을 떴다. 딱히 돈이 필요한 나이도 아니다. 다만 억울한 세월을 보상 받기 위해 고독한 투쟁을 하고 있을 뿐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국적을 포기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정부가 나서서 해결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