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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영화감독인 박수남(朴壽南)씨가 ‘여자정신대’의 한맺힌 과거사를 필름에 담기 위해 메가폰을 잡은 때가 1990년이었다. 이미 13년 전의 일이고, 당시 그녀 나이 54세였으니까 올해 67세가 된다. 그녀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일제 만행에 대한 동포들의 무관심이 놀라울 정도로 심하다.”며 “생존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면서 증언을 듣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고충을 털어 놓은 바 있었다.
그녀가 제작한 기록영화의 제목은 ‘아리랑의 노래’였다. 그녀는 “그동안 일본과 한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44년 10월부터 정신대로 끌려간 조선 여성은 모두 20만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생존자는 7~8만명 쯤 된다.”고 밝힌 바 있다. 13년이 지난 지금 과연 몇명이나 살아 있을까. 확인할 수는 없으나 아마 수백명이 채 안될 것 같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증언도 했었다. “오끼나와 현립 평화기념자료관에 보관되어 있는 ‘석민단회보(石民團會報)’를 보면 44년 9월부터 견청정(見晴亭), 관월정(觀月亭) 등 14개소에서 영업을 개시했다.”라고 되어 있고, “조선에서 끌려온 업부(業婦), 즉 위안부들에게 ‘사용자(일본 군인)의 입장을 잘 이해해서 어느 사람에 대해서도 공평하게 대할 것을 제일의 수칙으로 삼아 사용자에게는 세심하게 최대의 봉사를 할 것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일본 군인들이 사용자였다면 조선 위안부 여성들은 고용자가 된다. 바로 이 대목이 우리의 분노를 자아낸다. 누구가 인정한 사용자이고, 누구가 승인한 고용자인가. 더구나 성(性)은 상품이 아닌데도 그들은 성을 ‘물건’으로 간주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국적포기를 준비 중이다. ‘물건’으로 살았던 세월도 억울한데 국적마저 포기하게 되면 그녀들은 조국으로 부터도 보호 받지 못하는 ‘지구의 고아’가 된다. 이건 진정 안될 말이다.
이창식/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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