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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노점상과 유목민

 

지난 신묘년의 후미진 여울목을 통과한 임진년 정월은 정처 없이 방랑하는 숱한 사건들을 대동하고 들어설 것만 같다. 신묘년과 임진년의 겨울이 옷깃을 스치는 시절(時節), 신묘년은 자신의 미래인 임진년을 흘깃 쳐다보고, 임진년은 자신의 과거가 망토를 걸치고 하산하는 것을 본다. 이렇게 지난 섣달과 오는 정월이 조우(遭遇)하는 곳에 노점상들은 옷깃을 여며가며 꿈들을 퍼내고 있다. 그들에게 현실은 꿈조차 사치란 말인가?

임진년 정월로 치닫는 이 계절에 낮은 종종 걸음으로, 바쁜 일상이지만 밤은 아주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까맣게 다가와 긴긴 어둠의 망토를 골목골목 펼쳐놓는다. 사실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늘을 떠다니던 구름에는 주인이 있었던가. 바람도 그러했다. 그런데 땅에선 왜 이다지도 ‘네 것’, ‘내 것’이 분명해야 하는지, 어느 산에 올라 겨울이 뭉텅이로 떨어진 텅 빈 공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호탕해진다.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자연이 내 가슴 속으로 한 없이 밀려오기 때문이리. 그렇다. 국유림, 사유림이라 구별하지 말고 태초의 자연을 떠올리며 산을 가슴으로 끌어안자. 우리 모두의 하늘 아래에서 마음이나마 풍요로워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도시의 골목으로 들어가 보자. 사람들은 사람들과 어울렁더울렁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가 보다. 노점상들이 연합해 각자 자기만의 아이템을 가지고 판매경영에 몰두한다. 특히 서민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주변에 노점이 자리한다. 아마도 동병상련(同病相憐), 끼리끼리의 어울림일지도 모른다. 통행은 다소 불편해도 사람 사는 맛을 느낀다. 그리고 한 없이 짠한 느낌이 가슴 속 저 밑바닥부터 차오른다.

그래도 꿈을 가져야 한다. 꿈마저 없으면 무슨 소망으로 살아가겠는가? 그들에게 안정된 단 몇 평의 점포만 있어도 풍찬노숙(風餐露宿)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노점은 노점으로서의 역동성이 있다. 아마도 그것은 노점상이 유목민과 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목민은 정처 없다. 대표적인 유목민으로 세계대제국을 세운 몽골족을 떠올린다. 생활의 수단인 가축들을 방목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그들은 푸른 초장을 찾아 이동한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왕복하며 이동하다 보면 어느새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다. 그때까지는 그들은 신선한 풀들을 찾아 이동하며 희망을 품고 산다. 동시에 머무는 동안 파생됐던 구차하고 낡은 인습과 구태들은 출발과 함께 내버린다. 자기정화, 그렇기에 유목민은 꿈의 인도를 받아 현실을 새롭게 만들어가며 살아간다.

그보다 더한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며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목민. 유대인들이 그들이다. 까마득한 그 옛날 창세시대부터 구름과 별과 바람의 인도를 받으며 장막 텐트를 짊어지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 그 숱한 세월을 유목하며 살아가지 않았던가? 21세기 세계역사에서도 그들의 위치는 강력하며 가히 세계 중심적이다. 임진년 정월과 입춘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노점상들은 골목에서 부는 차갑고 냉랭한 동네 민심바람을 맞으며 길 위에서 유목민처럼 살아간다. 언젠가는 그들에게도 구름 기둥과 바람이 인도하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1992년 시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평택지부장

/시인 진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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