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회사를 막론하고 어느 조직이나 간신(奸臣)이 주도하면 망한다. 이는 만고의 진리로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례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역사상 손꼽히는 간신인 조고(趙高)는 어린 황제를 유린하며 진나라를 농단했다. 오죽하면 신하들이 황제가 있는 자리임에도 조고가 사슴을 보고 말(馬)이라고 우기자 모두가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을까. 이같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성어를 만들어 낸 조고가 중국을 대표한 간신이라면 우리 역사에는 대한제국을 일본에 판 이완용 등 을사오적이 대표적 간신으로 기록됐다.
간신의 특징은 국가나 사회, 국민들보다 자신의 안위와 개인의 영달을 우선시한다는 것으로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회사는 어찌되던 나만 살면 된다’는 식이다. 덧붙여 환관인 조고가 그랬듯 조직을 이끌 혜안도, 능력도, 숙련된 기능도 없지만 최고의 권력을 휘둘러 조직의 필요한 인재들을 도태시킨다. 그러면서도 최고 권력자에게는 해서는 안 될 아부와 교언영색으로 측근을 자처하며 주위를 맴돈다.
건국초기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리현상을 옆에서 듣던 장관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며 두 손을 비볐다는 이야기는 신화처럼 전해진다. 이러한 간신들을 연구한 동양 최초의 간신 연구서인 ‘간신론, 인간의 부조리를 묻다’라는 서책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징즈웬(70), 황징린(59) 등 중국 작가들이 쓴 이 책은 ‘한비자’, ‘설원’, ‘여씨춘추’, ‘육도’ 등 중국의 대표적 역사서를 망라하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실감있게 간신을 묘사하고 있다. 저자들은 한나라 유향의 입을 빌어 간신을 자리에 연연해 월급만 챙기는 구신(具臣), 권력자에게 아부만 하는 유신(諛臣), 내심 음흉하나 겉으로는 근면하고 좋은 말만 하는 간신(姦臣), 번지르한 말만 앞세우는 참신(讒臣), 조직의 힘으로 자신의 부와 명예만 높이는 적신(賊臣), 듣기 좋은 말로 결정권자의 눈귀를 멀게 하는 망국신(亡國臣) 등 6가지로 분류했다.
신기한 것은 이 같은 6종류의 간신이 오늘날에도 국가와 회사, 조직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에서 배운다는 말이 이처럼 실감나는 것도 그래서이다. 국록을 먹는 고위 공무원이 지위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고, 결정권자의 눈과 귀를 멀게 했던 이들의 행태가 정권 말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파열음을 내며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어느 조직이나 간신이 있을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라면 이들에 의해 조직이 망가지지 않도록 선구안을 가져야 하는 것은 최고 결정권자의 책무다. 악화나 양화를 구축하는 일은 없어야 조직이 산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