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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서울대에서 특강했던 기소르망이 강의 후 도통 질문이 없자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대학교정에서조차 토론문화가 이토록 척박할 줄 몰랐다”고 토로했던 적이 있다. 우리 지식사회의 단면을 아프게 파고든 일침이었다.
요즘엔 거꾸로 토론이 범람해서 문제다. 방송은 물론 각종 위원회와 학술단체 등에서 연중 심포지엄과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다. 아마도 ‘토론의 달인’ 노무현 대통령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어쨌거나 토론이 활성화되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토론의 문화다. 각종 토론이 결실을 일궈내기 위해서는 건전한 토론문화 혹은 비판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토론문화 정착의 요체는 크게 세가지다. 상대를 인정하는 것,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는 것, 그리고 건전한 비판을 수용하는 자세다. 보통 비난과 비판은 ‘감정이냐 이성이냐 혹은 대안을 제시하느냐 망신만 주고 나몰라라 하느냐’에 따라 갈린다. 비판을 수용하는 자세를 갖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고도의 인내심과 끝없는 자기수양이 필요한 대목이다. 무엇보다 건전한 비판에 섣불리 화를 내는 건 스스로의 발전을 저해하는 일임을 깊게 인식해야 한다.
근래 도문예회관 관장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거세다. 거기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일차적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그의 평소 언행과 업무스타일에 문제가 있다. 지방언론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 무성의한 노사 협상자세, 그리고 가장 심각한 건 언론의 비판을 수용하려는 의지의 결여다.
언론의 비판 또한 지나치게 홍사종 개인에 초점을 맞춘 듯한 측면이 있다. 가령, ‘홍사종 그사람 문제있다’는 식의 접근은 저널적 잣대와는 거리가 멀다. 모름지기 신문의 기사는 개인에 대한 호불호가 아닌 현안에 대한 사실보도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불거졌던 몇몇 기사를 살펴보자. “홍 관장 같은 강의내용 우려먹어 망신살”(경기일보), “홍관장, 외부 공연단과 수의계약”(인천일보), “주차공간 태부족, 남은 공간 직원들이 독점”(경기신문), “전시실 방치, 작품 수송도 곤란”(경인일보), “독립법인화는 도립예술단 말살책, 추진방법도 문제”(경기신문)
언론의 지적은 대체로 옳다. 그러나 어떤 기사는 사안의 옳고그름을 떠나 다분히 감정적으로 보이는 것도 있다. 더구나 그것이 문예회관의 미래비전과 관련된 것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따라서 그 점에 대해서는 보다 심도 있는 논의와 밀도높은 관찰이 필요하다.
문예회관의 독립법인화 문제다. 노조와 예술단의 입장을 파악한 언론의 지적은 일면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사안을 지나치게 미시적으로 바라보는 것일 수 있다. 관장의 입장이든 노조의 입장이든 특정인의 입장에서 쓰는 기사는 자칫 입장주의적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단언컨데, 문예회관의 독립운영 모색은 평가해야 한다. 문제는 추진방법이고 사안의 핵심은 문예회관의 경쟁력 제고다. 경기도의 경제규모와 인구가 서울을 앞지른 마당에 유독 문화·교육환경은 ‘중앙’에 비해 낙후돼 있다. 그런 문제의식속에서 회관 독립법인화 논의가 출발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문득 <맞아죽을 각오로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이 떠오른다. ‘대체 왜 이리 엄살일까’ 싶지만, 책을 읽고 나면 “맞아죽을 각오로 썼다기에, 때려죽이고싶은 마음으로 읽었지만, 읽고나서는 오히려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는 독자리뷰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시종 확신에 찬 어조로 한국과 한국인을 비판하면서도 종래 그것을 읽게될 한국인의 반응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했던 듯하다. 따라서 책 제목에 붙은 ‘맞아죽을 각오로’라는 수식은 그것 자체로 비판문화에 길들여지지 않은 한국인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언론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를 갖춰야 하는 건 대통령이든 홍 관장이든 마찬가지다. 그렇지 못해 불화를 키우는 건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다. 언론 또한 감정이 아닌 논리와 이성으로 발전적인 비판에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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