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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나무에 대한 예의

 

바람의 속도만큼 봄이 번진다. 푸른 것들은 입덧을 시작했고 나무는 허공에 제 몫의 길을 내느라 바쁘다. 뒷산을 내려온 산수유 나를 노랗게 물들이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봄이 강타한 들판은 푸른 것들로 수런하다.

몇 해 전 심어놓은 과수들을 돌보기 위해 밭으로 나간다. 두엄을 받아놓고 지난 가을 마늘을 심고 덮어놓은 비닐을 걷어낸다. 마늘 농사는 처음이라 겨우내 마늘이 동사할까 싶어 짚을 깔고 그 위에 또 비닐을 덮어놓았더니 발아가 안 된 마늘이 반이다.

너무 더워서 골은 것 같다. 대추나무에 가지치기를 한다. 제법 많이 자랐다. 무슨 이유인지 작년에는 대추 꽃이 피질 않았다. 잎과 가지만 무성할 뿐 꽃을 피우지 않던 녀석들이 키만 잔뜩 키웠다. 눈을 살펴가며 가지치기 한다. 서툰 솜씨로 웃자란 놈을 잘라주고 무성한 가지를 쳐낸다.

이 가지도 아깝고 저 줄기도 아깝고 나무를 자르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 제대로는 아니지만 정성을 다해 키운 녀석들 몸의 일부를 쳐내는 일이 부담이 된다. 감나무, 자두나무는 병충해와 싸우느라 군데군데 상처가 많이 나 있다. 팔에 힘을 잔뜩 주고 톱질해 병든 가지를 잘라낸다.

지난해 겨우 건진 몇 알의 대추를 어머님 재상에 올리면서 ‘내년에는 농사 잘 지어 크고 싱싱한 대추로 올릴게요’하고 가슴으로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지를 쳐내는 일이 나무에 대한 예의인가, 하늘에 대한 예의인가 하는 생각에 붙들려 잠시 일손을 멈추고 올려다본 하늘이 평온하다. 흙 한 삽 뜰 곳 없는 척박하던 살림에 300여 평 밭을 장만해 몇 가지 유실수를 심고 상추며 가지며 밭을 일궈 푸성귀를 키운다. 몇 년 묶어 묵정밭이 된 땅을 일구는 것이 싶지는 않지만 땅을 파헤칠 때마다 고물거리는 지렁이와 땅 밑 벌레의 꿈틀거림을 보며 아직은 살아있는 땅, 흙이 건강해 보여서 안심이 된다. 언제부터 세 들었는지 달박달박한 달팽이와 알을 품다 소스라치게 날아오르는 꿩이 나를 더 놀라게 하기도 한다.

내가 지은 농사보다 더 무성한 풀들, 잡초를 뽑아주고 며칠 후에 가보면 또 수북하게 자란 풀을 보면서 농사는 하늘 농사가 으뜸이라는 생각을 한다. 썩은 호박 속에 고여 든 고물고물한 벌레와 해바라기를 타고 올라선 나팔꽃이 먼저 인사를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번지는 칡덩굴이 햇살을 칭칭 감아올린다. 밑 둥을 잘라내도 어느새 또 그만큼 자라있다.

들판에 나오면 깨닫게 된다. 자식을 키우는 일이나 곡식을 키우는 일이나 순리에 따르고 하늘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능력보다 앞서는 욕심과 내 자식은 될 거라는 기대심리가 서로를 어렵게 한다는 것을 자연은 말없이 일깨워준다.

흙 몇 삽 퍼 땅을 갈아엎고 묘목을 심고 그 묘목이 자라 꽃을 피우고 제 몫의 과실을 매달고 태양과 비와 바람을 불러들여 키우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신기하다. 문득 자연에 대한 예의, 나무에 대한 예의를 얼마나 지키고 살았는가 헛웃음이 나온다, 부질없는 감상이 턱을 괴게 하지만 가슴에 고이는 봄이 제법 깊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2006년) ▲안견문학상 대상(시)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

/한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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