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작품인 ‘베니스의상인’은 세계인들에게 두루 읽히는 고전(古典)중 고전이다. 작품 중에 빚을 담보로 채권자로부터 1파운드의 살을 떼내려던 샤일록은 악독한 사채업자의 대명사가 됐다. 이야기는 슬기로운 처녀 포샤의 기지로 해피엔딩이 되지만 빚 대신 맨살을 베어내려는 사채업자의 의도는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베니스의 상인’이 1596년 전후의 작품임을 미뤄 400년의 시공간의 차이가 있음에도 빚의 무서움은 여전하다.
통계청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가구중 56.2%가 금융부채를 안고 있다고 한다. 전 국민의 절반이상이 빚에 허덕이는 삶을 힘겹게 버틴 것이다. 소득 하위 20%이하를 의미하는 1분위의 경우 절반이상이 월세보증금, 결혼자금, 생활비 등 생계비로 빚을 졌다. 반면 상위소득계층인 4, 5분위는 절반이상은 부동산을 사기위해 빚을 졌다고 하니 여기서도 양극화된 우리사회의 그늘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통계는 전년보다 빚을 진 가구가 2.5%P 늘어났음을 보여주는데 올해와 내년은 없는 사람에게는 더욱 힘든 삶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에는 주택담보대출의 46%가 만기 도래하거나 거치기간이 종료돼 서민들의 빚 감당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올해 1분기에만 금융채무불이행자 곧 신용불량자가 2만3천여명이 늘었다.
이같은 통계자료가 아니더라도 서민들의 삶이 팍팍하다는 것은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누구나 감지할 수 있다. 특히 사회의 출발선에 선 대학졸업생들이 엄청난 빚으로 인해 한걸음 전진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고교 졸업생 10명 가운데 8명이 대학에 진학하는 우리나라에서 연간 1천만원에 이르는 등록금은 젊은 청춘을 출발부터 빚에 찌들게 한다. 2011년 4월 말 현재 학자금대출로 인한 신용불량 대학생 및 졸업자가 7만명을 넘어섰다는 자료는 충격적이다.
빚에 허덕이던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것은 일부 부유층 자녀를 빼고는 일반화돼 있다. 나아가 돈이 된다면 신체적 위험을 무릅쓰고 생체실험 마루타가 되거나 유흥업소의 유혹에 빠지는 슬픈 현실을 낳고 있기도 하다. 급전이 필요하면 소액을 위해서도 피(血)를 파는 요즘, 샤일록에게 살을 팔겠다는 일이 없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빚이 빚을 부르는 가난의 대물림이 고착화되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실이 무섭다. 구조화된 가난과 꿈이 없는 오늘은 우리사회의 엄청난 재난으로 돌아온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