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영 전 문화방송(MBC) 사장이 신임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가 됐다. 경기문화재단은 경기도의 문화정체성 탐구를 기반으로 문화예술 활동을 확산하기 위해 대한민국 최초로 설립된 문화재단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따라서 경기문화재단 산하에는 경기문화재연구원, 백남준아트센터, 경기도박물관 등 경기도의 대표적 자랑거리가 즐비하다. 또 각종 문화행사, 전시, 교육 등으로 경기도의 정신을 만들어내고 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중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문화’라고는 문화방송에 근무한 것밖에 없는 엄기영 씨가 경기문화재단 대표로 내려왔다. 엄 대표는 국민들에게 얼굴이 잘 알려진 인기 앵커출신으로, 그런 장점을 살려는 정당들의 영입경쟁 끝에 지난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입당,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했으나 떨어졌다. 그것도 아직까지 사법적 시비가 끝나지 않은 측근들의 선거법 위반으로 혼탁선거를 치룬 끝이어서 영 뒷맛이 좋지 않다. 여기에 문화방송 후배기자들은 엄 대표가 사장시절 소신과 달리 한나라당 입당이후 훼절했다는 비난까지 하고 있어 주변정리도 매끄럽지 않다. 이 과정에서 엄 대표를 영입한 한나라당은 보수우익 논객인 조갑제씨로부터 “창녀의 윤리도 없다”는 비난을 사야 했다.
여기서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인사 난맥상도 짚을 수 있다. 삼척동자도 알다시피 경기도 산하기관장의 인사는 김 지사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김 지사는 경기문화재단 이사장이기도 하다. 엄 대표가 내정되기 달포 전부터 ‘엄기영 경기문화재단 대표설’이 돌았고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만약 새누리당 소속인 김 지사가 거절할 수 없는 측의 추천을 받았거나 과거 자신과의 인연을 매개로 엄 대표를 발탁했다면 이는 경기도민을 철저히 우롱한 것이다.
강원도에서 출생해 강원도지사에 출마했고, 문화에는 비(非)전문가인 엄 대표의 어떤 점을 평가해 영입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혹시 문화방송이라는 거대 공영기관을 이끈 경영능력을 평가한 것일지 모른다.
경기도 산하기관에 근무하는 직원들 사이에는 ‘땡 치면 서울’이라는 우스게 소리가 있다. 서울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 온 기관장이 퇴근시간인 6시만 되면 곧바로 서울로 직행한다는 이야기다. 이러다 보니 경기도의 정체성은 커녕 직원들의 얼굴도 모른 채 억대 연봉의 자리만 지키며 ‘얼굴마담’만 하다가 또 다른 기회가 오면 자리를 박찬 사례가 여럿이다. 과연 엄기영 대표는 어떤 생각으로 취임하는 궁금하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