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난 어디선가 한숨지으며/얘기하겠지요./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난 사람이 적은 길을 택했다고./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마지막 시어는 의미심장하다. 이 시에서 화자는 ‘숲 속의 두 갈래 길 중 사람이 적은 길을 택했는데, 그래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퇴임했다. 오원춘 사건이 발생하자 최고책임자였던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어도 일반인보다 경찰이 더 큰 지탄을 받게 되고, 경찰의 최고책임자인 점을 고려한다면 어쩌면 여론의 화살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 청장은 역대 경찰청장 가운데 가장 많은 일을 했고, 조직발전에 헌신을 다한 사람이다. 온 가족이 단칸셋방에 살며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는 고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를 통해 외무부에서 근무했다. 외무부에 근무하면서도 그는 경찰제복이 너무나 멋져 보여 경찰이 되고 싶었다. 그의 어머니는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지만 그에게 항상 준법정신과 희생정신, 정직함을 강조했다. 경찰관이 되면 바로 어머니가 말하는 삶을 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경찰행정 특채로 경찰에 입문했다.
그는 경찰의 모든 것을 개혁하기 위해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택했다. 남들이 걸어온 길을 걷는 것이 쉽고 편했을 테지만 그는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신념과 의지로 경찰의 개혁을 단행했다. 경찰이 시민들에게 모범이 돼야 하고 국민의 경찰을 강조해 왔다. 새벽 5시 전에 일어나 독서와 운동으로 하루를 열고 하루 종일 부지런히 업무에 임했다. 비리를 근절시키려 했고,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를 엄중하게 단속했으며, 경찰 내부에서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발표하도록 회의 분위기를 이끌었고, 현장방문으로 소통의 문을 열었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지휘관으로서 분주한 삶이었지만 수원에서 잔인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결국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한 그에게 엘리엇 시인이 황무지에서 노래한 것처럼 그야말로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조 청장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이경백 사건으로 경찰의 위상이 또다시 실추되자 전국경찰에 글을 올렸다.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의 진실’이라는 편지였다. 서울경찰청장 시절에 그는 이경백 사건에 연루된 경찰관들에 대해 날카로운 칼날을 겨냥했다. 국민을 위해, 조직의 정의를 위해, 그에게는 고독한 아픔이었다. 부정부패 척결과 인사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했던 조 청장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편지에서 이경백이 어떤 인물이고 그를 왜 수사하게 됐는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평소 경찰·국세청은 물론 많은 기관에 손을 펼치고 있었다. 바지사장들만 수사 대상에 올랐을 뿐 이경백 본인은 단 한 번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에 분개한 조 청장은 ‘서초경찰서에서 가출 여학생을 수사하던 중 이경백이 실소유주인 룸살롱에서 성매매를 강요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해 수사에 착수했다. 3개월 간 73개의 계좌·장부를 집중 조사한 끝에 42억여 원의 세금 포탈·미성년자 고용 혐의 등을 입증해 이경백을 구속했다. 퇴임을 앞둔 상황에서도 불미스러운 소식을 접했던 그의 심정은 착잡하고 무겁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경찰의 위상이 실추될까 봐 우려했다. 그는 “경찰 모두가 반성해야 할 일”이라며 “그동안 경찰은 지속적인 자정운동을 통해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는데, 이 점이 퇴색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직을 위해 소신의 말을 굽히지 않았고, 수사권조정 등 국민을 위한 경찰이 돼달라고 호소하며 하루를 1년처럼 살아왔다. 제복을 벗는 눈물보다는 조직을 위해 못다한 눈물이 더 클 것이다. 그의 이임식에 전국의 많은 경찰관들이 참석하고 위로와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제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가?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인가? 퇴임한 그가 새로운 길, 남들이 가지 않을 길을 또다시 걸어갈 것이라 기대해 본다. 그리고 경찰에 남겨진 자들은 그의 뜻이 퇴색되지 않기 위해 그가 못다 걸어간 길을 이어가길 바란다.
/박병두 시나리오 작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