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식 화법과 투시법을 적용했던 궁중 책거리와는 달리 민화 책거리는 역원근법과 함께 비합리적인 표현을 구사하였는데, 이것이 오히려 민화의 매력으로 작용한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의 전통미술에 심취하여 많은 글을 남긴 일본의 민예연구가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는 1957년 제자로부터 민화 책거리를 받고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나의 직관은 이 그림이 대단히 매혹적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뭔가 신비로운 아름다움마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혜를 짜서 다시 바라보면 이 그림만큼 모든 지혜를 무력하게 만드는 그림은 좀처럼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실은 이 그림이 근대인인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모든 불합리성에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된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지적대로 민화 책거리는 비합리적 요소 또는 불합리성을 가득 안고 있다. 가회민화박물관에 소장된 두 폭의 민화에서도 이러한 점을 느낄 수 있다.
두 폭의 책거리 모두 서책을 역원근법으로 그렸고, 항아리 등 도자기의 표면을 포갑의 문양과 같게 처리하여 둥근 면의 입체감이 사라지고 평면적인 면 구성처럼 보인다. 오른쪽 그림은 거북과 새, 모란, 책 더미 등으로 구성되었다.
화면 아래에는 상서로운 기운을 뿜고 있는 거북과 괴석, 도자기가 놓여 있다. 그 뒤로 포갑에 싸인 책 더미가 빽빽하고, 책 위로는 각각 복숭아를 담은 접시와 새 두 마리가 있는데 말을 할 줄 안다는 설명으로 보아 앵무새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모란의 풍성한 꽃송이가 선명한 색채로 그려졌다. 그림 위의 화제는 다음과 같다. “한 쌍의 거북이가 뿜어내는 상서로운 기운이 진하고, 서갑과 그 뒤로는 꽃병을 두었다. 향기가 움직여 봄 바람이 그 안에서 살아나고, 한 쌍의 백년조가 사람을 향하여 능히 말을 하네(有一雙龜瑞氣濃 書匣而匣後置花? 香動春風其內養 一雙百年鳥向人能言語).”
왼쪽 그림의 아래쪽에는 골패가 흩어져 있고 박쥐무늬로 장식한 서안 위에는 문방사우와 물고기형 연적, 도자기 잔, 병과 항아리, 필통, 그리고 책 더미가 놓여 있다. 공작 깃털 여덟 개가 꽂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수직으로 길게 뻗어 화면에 생동감을 주고 있다. 그림 상단의 제발문에 역시 그림의 정경을 그리고 “제초(齊楚)”라는 관지를 적었는데 누군지는 알 수 없다. “서안 위 고동 항아리에 공작 깃털 몇 개가 꽂혀 있고, 그 옆으로 붓과 벼루 같은 문방구류가 놓여 있는데 모두 더없이 좋다. 제초(案上立一古銅壺 揷孔雀尾數莖 其傍設筆硯之類 皆極 齊楚)”
/박본수 경기도박물관 학예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