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믿고 따를 만한 세계인 걸까요? 이 세계가 눈앞에 펼쳐 놓은 광경은 세계가 의도하는 대로 명백한 사실과 진리임에 틀림없는 걸까요? 이 세계에서 나와 나의 친구, 나아가 이웃들은 세계와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서 살고 있는 걸까요? 우리가 습득한 가치, 생각, 상식 들은 올바른 탐구의 어렵고 험난한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 맞는 걸까요?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우리와 관계하고 있는 이 세계의 배후를 쉽게 안심해도 되는 걸까요?
어쩌면 이 세계는 세계가 감추려고 애쓰는 어두운 면이나 그릇된 부분을 모르거나 비겁하게도 모른 척 할 때에만 우리에게 친절을 가장한 미소를 보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그렇다, 아니다 라는 판단을 쉽사리 남에게 맡겨서는 안 되겠지요. 판단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물끄러미’ 지켜보거나 들어야겠습니다. 청아하고 꾸밈이 없어서 쓸쓸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듯이.
아이들이 큰소리로 책을 읽는다
나는 물끄러미 그 소리를 듣고 있다
한 아이가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
딴 아이도 따라서 책을 읽는다
청아한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로
“아니다 아니다!” 하고 읽으니
“아니다 아니다!” 따라서 읽는다
“그렇다 그렇다!” 하고 읽으니
“그렇다 그렇다!” 따라서 읽는다
외우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목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 대로 따라 읽는다
이 봄날 쓸쓸한 우리들의 책읽기여
우리나라 아이들의 목청들이여
- 김명수 시집 ‘하급반 교과서’
/1983년/창작과 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