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국회의원’이라는 호칭보다는 ‘시인’이 잘 어울리는 도종환 씨의 작품 중에 ‘담쟁이’라는 시가 있다. 이 시는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도 수록돼 있다. ‘저것은 벽/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그때/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중략)../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결국 그 벽을 넘는다.’ 고개가 끄덕여 지는 작품이다.
이 시는 어린 학생들에게 절망하지 말고 끝까지 목표를 향해 가면 반드시 벽을 넘을 수 있다는 희망을 노래한다. 또 혼자보다는 여럿이 힘을 합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노래함으로써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식의 개인주의에 물든 사회풍토를 개선시키려 한다. 그런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시 ‘담쟁이’를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권고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9일 검정 심사를 통과한 중학교 국어 교과서 중 도종환(58) 민주통합당 의원의 작품이 담긴 8개 출판사에 도 의원의 시를 다른 작품으로 교체할 것을 권고했다. 도종환 의원이 현역 정치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역 국회의원의 경우 정치적 중립성을 감안해 수록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서정시인으로 알려진 그의 시에 정치성이 있단 말인가? 또 권고 사항이기 때문에 해당 출판사가 도의원의 시를 삭제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는데 검정교과서를 심사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정부출연 기관이다. 따라서 도종환 시인의 작품을 싣고 있는 8개 검인정 교과서 출판사들이 교육과정평가원의 ‘지시’나 다름없는 ‘권고’를 외면할 수 있을까?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들 사이에서 거센 비난이 일고 있다. ‘접시꽃 당신’을 통해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며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도 시인이 야당 국회의원이 됐다고 해서 삭제를 권고한다는 것은 옹졸하다. ‘담쟁이’ ‘종례시간’ ‘수제비’ 등 그의 시5편과 산문2편은 이미 2002년부터 교과서에 실려 있으며 지금까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5공 민정당 전국구의원이던 김춘수시인의 ‘꽃’이 교과서에 실린 것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김춘수 시인의 작품을 삭제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교과서를 정치와 이념 대결의 장으로 만들지 말자. 보수성향의 작가 이문열씨 마저도 “보기에 민망하다”고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