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Nokia)는 핀란드의 삼성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핀란드 경제를 책임졌을 뿐 아니라 핀란드인들의 영혼까지 떠맡은 휴대전화부문 세계 1위 기업이다. 아니 1위 기업이었다. 1865년 창업돼 통신분야에 집중하더니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휴대폰 하나로 태양을 향해 치솟더니 낙하하는 속도도 엄청났다. 지난 9일 현재 노키아의 주가는 1주당 1.84달러로 16년내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비극적인 것은 이것이 바닥이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어려움을 겪으면서 핀란드의 자존심이라는 명예를 버리고 대량 해고와 구조조정을 통해 살 길을 찾고 있지만 국제신용평가사들은 노키아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Junk)으로 분류하는 냉정함을 보였다. 지난 5년간 노키아의 시가총액 94%가 공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때 노키아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세계 1위에 오른 경제교과서의 모범이었다. 1992년 잘나가던 제재, 타이어, 고무 등 그룹산하 24개 계열사를 모두 통폐합해 ‘휴대폰’에 올인하더니 드디어 1997년 모토롤라를 물리치고 세계 정상에 올랐다. 이때만 해도 모든 경제관계자와 매체들은 ‘노키아 찬가’를 불렀고, 핀란드 국민들은 노키아 상표를 국기와 동일시하기도 했다.
이런 노키아가 어떻게 몰락의 길을 걸었을까. 답은 너무도 뻔해서 오히려 놀랍다. 제조회사가 시장을 무시하고, 혁신으로 1등이 된 회사가 관료주의적 정체성에 빠진 것이다. 생소하겠지만 요즘 대세인 ‘터치 스크린폰’을 처음 개발해 시장에 내놓은 것은 애플이 아니라 노키아였다. 그것도 애플보다 무려 2년이나 빨리 시장에 내놓았다가 첫 반응이 시원찮자 손을 털었다. 무엇보다 시장의 욕구는 시시각각 변해가는데 “휴대폰의 주요 기능은 통화이고 인터넷이나 부가서비스는 그야말로 부가적”이라는 둔감한 판단이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게 했다. 여기에 1등을 지키기 위한 관리형 관료체제가 몰락을 가속시켰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노키아의 몰락으로 우리나라 기업인 삼성과 LG 등의 우수성이 입증된 것이 아니냐며 콧노래를 부를 때가 아니다. 늘 깨어있지 않으면 삼성, LG 등 우리나라 대기업도 노키아와 같은 신세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세계적 경제전문지 포천이 발표하는 세계 500대기업은 10년이 지나면 1/3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고 하니 무섭다.
한때 성공 모델의 전형이었던 노키아가 몰락기업의 대표적 모델로 꼽히는 시장의 냉정함을 기업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어느 조직이나 진화하지 않으면 죽는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