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계에서 ‘왕(王)회장’이라는 명칭은 보통명사가 아니라 특정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다. ‘현대’라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을 일군 ‘고(故) 정주영 회장’이 주인공임은 불문가지다.
왕 회장은 대한민국 경제부흥사의 주역으로 현대가(家)를 이루기까지 수많은 공과와 함께 신화를 남겼다.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를 들고 차관을 얻어와 대한민국 조선업계를 세계 최강으로 끌어올린 일은 대표적 신화다.
그런 왕 회장에게도 생전에 이루지 못한 꿈이 몇 가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위험한줄 알면서도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던 것, 말년에 소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했던 것 등은 아마도 그 꿈을 좇는 일이었으리라.
현대자동차는 기업의 모태인 현대건설과 함께 오늘날의 현대를 만든 주역이다. 현대자동차의 질주가 시작된 후 왕 회장은 일관제철소를 갖는 소원을 자주 이야기했다고 한다. 철을 만들고, 그 철로 자동차를 생산하는 시스템을 꿈꾼 것이다.
하지만 생전에 왕 회장은 정부정책과 경제현실에 밀려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러한 왕 회장의 뜻은 맏아들인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 현대그룹의 후계자에서는 밀렸지만 아버지의 유지 계승을 강력히 소망했던 MK(정몽구 회장)는 물려받은 사업이 제 궤도에 오르자 오랜 꿈인 제철소를 인수했다. 지금의 현대제철이다. 현대제철은 2000년 인천제철과 강원산업을 인수해 현대제철로 이름을 바꿨다. 여기에 2004년에는 말 많던 한보철강을 인수해 공룡을 성장할 둥지를 만들었다.
현대제철은 2010년 완공된 1,2 고로에 이어 현재 3고로 건설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조강능력 연 2천400만톤, 세계 10대 철강회사’라는 꿈이 손에 잡힐 듯 다가서고 있다. 여기에는 MK의 무한애정과 시장의 흐름을 무시한 무한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연초에는 후계자인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제철 이사로 등록해 현대제철의 그룹내 위상이 급상승했다.
이런 준비작업을 마친 현대차그룹이 자동차에 들어가는 철강의 수입선을 포스코에서 현대제철로 대체해 나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다만 철강업계의 선두자리를 위태롭게 지키고 있는 포스코로서는 ‘올 것이 온 것’이지만 국내시장에서의 상징성은 물론 격화되는 제철시장에서 위기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결과다. 최근 포스코는 임직원들의 현대 및 기아차 구입배제로 역공을 가했으나 파괴력보다는 “현대차와 갈라섰다”는 선언적 의미로 해석된다.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쫓았다는데, 고인이 된 왕 회장의 꿈이 포스코를 울리고 있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