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덥다. 더위에 어떻게 견디느냐고 묻는 것이 인사가 돼 버렸다. 우리를 덥게 하는 것은 연일 지칠 줄 모르고 달궈지는 태양뿐 만이 아니다. 지구촌 축제인 런던 올림픽 한켠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밤잠을 설치게 한다. 올림픽 선전을 위해 4년을 피땀 흘려 준비하고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노고와 사연을 보면 가슴이 찡해 오기도 하고 그들의 의지와 다짐에 박수와 격려를 보내게 된다.
게임의 승부를 떠나 선수 모두가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젊은이들이다. 일부 심판의 횡포가 스포츠 정신에 먹칠하기도 하지만 이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을 바로 세우는 선수의 모습을 볼 때 ‘더없이 값진 정신의 메달을 그들은 이미 목에 걸었구나’하는 뿌듯한 마음이다. 메달을 따기까지 선수 자신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국민들의 응원과 격려 또한 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내가 선수들을 더 큰 목소리로 환호하고 응원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초등학교 운동회를 떠올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다닌 청주 시골 초등학교의 연중 가장 큰 행사는 운동회였다. 추석 바로 다음날 운동회를 했고 여름 방학이 끝나면서부터 운동회 연습을 했다. 매스게임, 콩 주머니 던지기, 손님모시고 달리기, 고전무용 등 많은 프로그램을 준비했고 하루에 서너 시간씩 운동회 연습을 했다. 운동회 날은 우리들의 갈고 닦은 기량을 선보이는 날이기도 하지만 마을 잔치이기도 했다. 5학년 운동회 날이다. 평택에서 큰아버지 고모 내외 등 친척들이 운동회를 보러 오셨다. 달리기 하는 것 보러왔으니 꼭 1등하라고 큰아버지는 주문했다. 8명이 함께 달리는 우리 팀에는 계주 선수가 끼어 있어 내가 1등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연습 때도 그 친구는 항상 1등을 했고 내가 그 뒤를 따르곤 했다.
하지만 그날만은 꼭 1등을 하고 싶었다. 운동회를 보기 위해 멀리서 온 친척들에게 꼭 1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부모님의 기분 좋아하는 모습도 눈에 선했지만 근심 또한 컸다. 마음일 뿐 내가 그 친구를 앞서기란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100m 달리기 출발선상에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꼭 1등을 하고야 말겠다고 다짐을 했다. 신발을 벗고 총소리와 함께 힘차게 뛰쳐나갔다. 역시 그 친구가 앞섰고 내가 뒤따랐다. 운동장의 커브를 도는 지점에 아버지와 큰아버지 그리고 가족들의 함성과 박수가 들렸다. 힘내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든 이기자 하는 마음으로 정말이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달렸다. 결승지점 몇 걸음 남겨놓지 않은 지점에서 친구를 따라잡았고 마침내 나는 1등으로 골인했다. 정말이지 벅찬 순간이었다. 그 날 경기에서 내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내 실력이 아니라 이기겠다는 아니 이겨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과 가족의 응원이 나를 이기게 한 것이다. 온 힘을 다해 달릴 수 있게 한 것이다.
정신이란 그런 것이다.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의지가 함께 할 때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실력보단 정신이 승부를 가르는 것이다. 선수들을 믿고 국민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응원해주고 격려해 준다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충분히 발휘해 값진 성과를 국민 모두에게 안겨줄 거라 믿는다.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한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2006년) ▲안견문학상 대상(시)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